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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함 켄드릭, 『경배』, 예배는 전적으로 다른 삶의 방식이다

by growingseed 2021. 4. 13.

 

그래험 켄드릭, 『경배』, 두란노서원, 1989

Graham Kendrick, Worship, 1984

1. 예배는 우리의 정욕에서 돌이키는 회개이며, 전적으로 다른 삶의 방식이다.

2. 예배는 이 시대 우상들과 영합하기를 거부하고 그 관계를 단절하는 것이다.

회개는 예배를 돌려 드리는 것이다: 우리는 전혀 예배로서의 회개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우리가 자주 범하는 죄에서 돌이키는 것보다 선동적인 찬송가를 불러 제끼는 것이 훨씬 더 쉽다고 여긴다. 우리로 하여금 예배드릴 때에 우리의 자만심과 정욕에 아첨하게 하는 그릇된 형태의 예배에는 죄된 행동이 개입되어 있다. 따라서 회개는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받으시기에 참으로 합당하신 그 분께 우리의 예배를 돌려 드린다는 전환의 문자적 표현이다그동안 예배는 당신에게 다가오는감정에서 일어나는 어떤 것쯤으로 오해되어 왔다. 그러나 예배가 의지의 의식적 발동, 즉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고 순종하는 행위에 근거함을 안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용서받은 기쁨과 같은 감정들은 우리가 그 분과 재결합한 결과로서 나오는 것이다. (23)

예배는 내 모든 삶의 영역을 포괄한다.: 만일 우리가 예배를 의식 순서와 집회로 전락시킨다면, 우리는 삶의 모든 구석구석을 채우시는 주님께 드려지는 일로부터 우리 삶의 가장 큰 부분인 노동을 박리시키는 일종의 영적 자기 분열증의 위기 앞에 놓이게 된다. (23) 예수님의 전 생애는 가장 속된 것과 인간의 생존에 있어서 기본적인 요소들까지를 포함하여 전체가 예배였으며 이 모든 것들이 그 분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것들이었다. (25)

순종이 예배이다: 순종이 곧 예배이며 하나님께 대한 순종 없이는 진정으로 그 분을 예배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열성적으로 혹은 발산하듯이 예배를 드리건 간에 일상적 삶의 진실을 결여하고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며 참으로 그 분께 속하지 않는다면 예배는 정력을 허비하고 소음을 만들어내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26)

예배는 전적으로 다른 삶의 방식이다: 예배는 주일의 어느 정해진 시간에 행해지는 일들이 아니다예배는 전통적인가, 현대적인가, 정적인가, 정열적인가, 흥미로운가, 따분한가의 문제도 아니다. 우리는 예배의 요체가 전적으로 다른 삶의 방식이라는 사실을 너무도 자주 간과하고 만다예배에 새로운 표현 양식을 채택하는 것이 예배의 진정성이나 하나님께 열납됨을 보증해 주는 것은 아니다. (29)

현대의 우상들, 풍요, 개인적 행복, 두려움, 불의한 사회 구조진정으로 예수님을 만유의 주님으로 예배한다는 것은 곧 모든 거짓 신들에 대해 도전하는 것이요. 그 신들의 어둡고 음침한 통치에 대해 위협을 가하는 것이다따라서 예배가 하나의 정치적 행위라는 말은 절대적으로 맞는 말이다. 예수님이 주님이시라면 다른 모든 는 그 칭호를 떼어 버리고 그 분께 복종해야 한다. (33) 주님이시며 진리의 하나님을 고백하는 순간, (불의한) 제도에 영합하기를 거부하고 그러한 관계를 단절한다. (34)  

예배는 공동체적이어야 한다. 개인주의적 예배의 관중이 되어서는 안 된다. (42) 바른 관계가 바른 예배를 낳는다. (45) 서로를 향하는 찬양이 필요하다. (47) 예배 인도자는 내가 어떻게 비추일까 관심을 갖기 보다, 이기적인 유익을 찾기 보다, 모임에 나올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도록 진중한 노력을 기울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자기만을 추구하고 영적인 진실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50) 우리의 시선을 다른 사람의 행복에로 신중하게 돌림으로 우리 자기 중심성에 집착하는 것을 피할 수 있다. (51) 찬양하고 경배하라는 명령의 본질은 초대이다. (60)

시편 117. 비록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고 즐겁고 감사할 일이 없으며 삶의 기쁨이 우리에게 사라진다 하더라도 그분의 변하지 않는 속성, 그 분의 신실하심과 사랑을 생각하면 우리의 마음이 드릴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을 그 분께 드릴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여전히 발견된다. (65)

요한계시록 5:9,10,12. 그 분은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다. (62) 요한복음 4:23-24.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 예배는 관계에 대한 반응이다. (73) 12:1-2 이 시대를 본받지 않고 우리를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린다. 휘장 안으로 들어간다. 

다른 사람들을 예배에 인도하기 위해서는 당신이 먼저 예배자가 되어야 한다. (150) 찬양할 것인가, 하지 않을 것인가. 하기 싫은 마음도 정직하게 내어 드리라 (179) 리처드 포스터, “우리는 우리의 말과 행동이 하나님께 그 근원을 가지도록 끊임없이 귀 기울이는 침묵 속에서 살아야 한다. 우리가 만일 우리 삶의 경영을 인간적인 힘과 지혜로 해나가는데 익숙해져 있다면 공예배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가능한 모든 대화, 모든 업무 처리를 하나님의 도움으로 하는 습관을 계발한다면 공예배에서도 그와 같을 것이다.” (189) 주님 제가 어떻게 섬길 수 있습니까? 저의 우정이나 특별한 격려나 선물이 필요한 사람은 없나요?” (190) 예배자가 되기 위하여: 예배 드리기로 결심하라/ 근원을 점검하라/ 가서 충만함을 받으라/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라 (198-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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