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처드 윈터, 『지친 완벽주의자를 위하여』, 김동규 옮김, IVP
Richard Winter, Perfecting Ourselves to Death: The Pursuit of Excellence and the Perils of Perfectionism, IVP, 2005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비루하지만 은혜의 토양이 되는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1. 완벽주의 증상
완벽주의는 실행 불안, 지연 행동, 우유부단함, 강박장애 등의 증상을 보인다.
우유부단: 완벽주의자는 자신이 어느 한 가지를 선택하면 다른 선택에 대한 기회를 영영 잃어버릴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려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따라서 영원히 여러 선택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마음 속으로 그 결과를 이리저리 재 보며 어느 한 쪽도 선택하지 못한다… <선택의 심리학>이라는 저서에서 배리 슈워츠는 두 가지 유형을 대조한다. 극대화자(Maximizers)는 선택을 내린 후에도 이런저런 의심으로 자신을 괴롭히며 내린 선택에 대해서 더 많이 후회하고 곱씹어 보면서 만족감을 덜 느낀다. 만족자(satisfiers)는 충분히 좋은 것을 얻었다면 그것을 받아들이고 더 좋은 것이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더 이상 걱정하지 않는다. (87)
강박적 성격: 완벽주의자의 사고와 행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고 결과적으로 자신의 환경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하는 것을 통해서 불확실성과 위험을 피하려는 시도임이 분명하다. (91)
지나치게 예민한 양심: 주도면밀한 사람은 지나치게 정직한 경향이 있으며, 사소한 도덕적인 문제에 몰두하고,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보통의 행동들을 죄라고 쉽게 단정짓고, 과거에 고백한 죄들을 자신의 기억 속에서 끊임없이 들먹이며 고민한다 (O. Hobart Mowrer) (95) 루터, “사소한 것들 것 대해서 정죄감을 갖게 하려는 마귀에게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서 가끔씩은 술을 좀 과하게 마시거나 놀기도 하고, 농담도 즐기고 또는 심지어 좀 죄를 짓기도 하면서 마귀에게 보란 듯이 도전하고 경멸을 표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어떤 죄에 빠지는 것을 지나치게 걱정하면 우리는 압도당할 것이다.” (97)
질문: 만일 당신이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일을 뒤로 미루는 성향이 있다면 당신의 생각이나 행동에 완벽주의적인 요소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옳은 결정이 아닐까 봐 두려워서 항상 결정을 내리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있다면 당신은 그들을 어떻게 도울 것인가?
2. 완벽주의자는 어떻게 사고하는가?
완벽주의자의 사고 방식, ‘전부 아니면 전무’: 해로운 완벽주의가 가진 대다수 특징들의 원인은 바로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사고방식이다… 궁극적 진리를 발견하는 데 몰두하다 보면 어떤 개념의 완벽한 공식을 찾기 위한 철학적 토론에 기약 없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103) 폴 투르니에,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강한 욕구가 있어서 관계를 끊을 때는 이후 그 사람과 알고 지내는 일도 거의 없다. 왜냐하면 자신이 생각하는 진정한 우정을 그 사람 안에서 발견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매우 실망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언제나 중요한 임무를 맡는 것을 꿈꾸면서 그 임무를 완성시키는 사소한 일들은 무시한다. 나는 그런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아마도 그런 삶을 영원히 잠정적인 인생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103)
참을 수 없는 모호함: 완벽주의자들은 양면가치를 피하려고 하면서도 오히려 실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실제로는 그러한 성향을 갖게 되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우리는 자녀양육의 비결이나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한 공식을 원한다. 우리는 규칙과 비법에 매력을 느낀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인생의 불확실성이나 모호함을 제거해 주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생은 깔끔하지도 잘 정돈되어 있지도 한다… 기독교의 가르침 가운데도 여러 분명하고 확실한 면이 있기는 하지만 현실의 어떤 면들에 대해서는 긴장 속에서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 부분들이 있다. 예를 들어 율법과 은혜, 하나님의 주관과 우리의 책임, 공의와 긍휼, 예정론과 자유 의지, 교리와 경험 등이다. 완벽주의자들은 상호 보완적이고 양립하는 진리 사이의 긴장 또는 균형 가운데 살아가는 것을 매우 어려워한다. 분명한 설명, 행동 방식에 대해서 분명하게 정해진 규율을 따를 수 있는 율법적인 교회에 매력을 느낀다. 자신의 입장을 정확하게 아는 것은 그들에게 안정감을 준다. (105)
‘해야만 한다’의 횡포: 언제나 좀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쫓기기 때문에 느긋하게 인생을 즐기지 못한다. 매우 예민하고 때로는 왜곡된 양심을 갖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종종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삶을 살 때 죄책감이나 수치심에서 오는 격렬한 고통을 느낀다… (107)
실수에 대한 두려움: (1) 완벽주의자가 배워야 할 사실은 “모험을 하지 않으면 잃는 것도 없다”는 것이다. “옳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 계속 정보를 얻는 동안 취해야 할 행동을 계속 미루고, 잘못된 결정을 내리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어떤 가능성도 포기하지 못하게 된다. (2) 폴 투르니에, “모든 것을 하기를 원하지만 아무 것도 선택하지 않고, 따라서 절대로 시작하지 않는다. 살아간다는 것은 다른 것을 버리고 어떤 한 가지를 선택하는 것인데 이들은 아무 것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결국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완벽주의자는 무엇인가에 헌신하기를 두려워 한다… 그리스도인의 경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하기에 그저 “주님의 때를 기다린다”는 고상한 변명을 내세우며 결정을 피하고자 하는 유혹이 있을 수 있다…. (3) 데니스 깁슨,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 “주님이 인도하시는대로 따른다”, “하나님이 하실 것이다”와 같은 말들은 우유부단함을 정당화하는 진부한 표현으로 언제든지 변질될 수 있다. 우리에게 혜택을 주기도 하지만 또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어떤 결정을 내리는 힘든 일보다는 그저 “주님의 때를 기다린다”고 말하기가 더 쉽다. 우리의 강박적인 성향은 무엇인가에 대한 헌신으로부터 움츠러 들려고만 한다. 우리의 종교적인 언어는 성스럽게 들리는 연막으로 비겁함을 감춘다. 최선을 다해 판단하고 결정하고 그에 따르는 어떠한 고통스런 결과로부터 배우기보다는 그저 기다린다. 우리는 시행착오로부터 배우기를 거부하지만 사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혜를 가르치실 때 가장 선호하시는 방법 가운데 하나다.” (109)
율법주의의 유혹: 율법주의적 교회와 지도자들은 권위주의적인 경향이 있다. 목사, 장로 또는 교회 위원회는 자신들이 하나님의 법과 진리를 지키는 수호자라고 믿기에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교인들에게 참여할 수 있는 자유를 거의 주지 않은 채 엄격하게 다스리려고 한다. 이러한 교회에서는 대개 두려움과 죄책감이 주요 통제 수단이 된다. 이런 교회의 교인들은 설교를 듣고 나올 때마다 상당한 죄책감을 느끼며 좀 더 노력하고 더 잘해야 한다는 무거운 부담감을 느낀다… 이런 특징은 또한 율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가정에서도 나타난다. (111)
현실의 부인: 아브라함 매슬로우, “살아가는데 두 가지 근본적으로 다른 동기가 있다. 건강한 완벽주의자들은 성장 가능성으로부터 동기 부여를 얻고, 그것이 시간이 걸리는 일임을 알고 있지만, 신경증적 완벽주의자는 어떤 부족감, 바로 지금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절박감에서 동기 부여를 얻는다.”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 현실의 일부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질문: 완벽주의자들은 왜 변화에 어려움을 겪는가?
3. 완벽주의의 근원
유전과 기질, 어릴 적의 경험, 불안, 수치심과 죄책감, 외모와 능력, 전도된 기준, 학대를 통해 형성된 수치심이 있다. 부모의 영향이 크다. 신뢰의 좌절, 수용과 과잉 보상, 지나친 비판, 중독과 이혼 등이 자녀들에게 영향을 준다. 한 국가와 사회의 문화도 완벽주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대중매체들도 압력을 줄 수 있다.
죄책감이 윤리(내가 행하는 것)와 관련해서 느끼는 것이라면, 수치심은 모범(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습과 비교한 현재 내 모습)과 관련해서 느끼는 것이다. 죄책감이 나의 행위나 사고에 대한 것이라면 수치심은 바로 내 존재와 성품의 본질에 대한 것이다. 가정 단순한 형태에서 죄책감은 “내가 무엇인가 잘못을 저질렀어”라고 말하는 반면 수치심은 “나는 나쁜 사람이야”라고 말한다. (125) 하나님이나 어떤 절대적인 가치를 믿지 않는 오늘날에는 진정한 죄책감은 거의 없고 우리 자신이 정한 기준대로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수치심만이 팽배하다. (127)
(질문) 나는 부모님으로부터 어떤 긍정적, 부정적 영향을 받아 왔는가? 내게는 자녀에게 파괴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해로운 완벽주의 성향이 있지 않은가?
인간은 유한하고 제한된 존재라는 사실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떤 일들에 대해서 불안이나 위험을 느낄 때 우리는 우리가 속한 세계를 통제하려고 한다. 때때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세계도 통제하려고 든다. 그 모든 것의 핵심에 있는 문제는 바로 하나님이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166)
우리에게는 미래에 있을 성취와 완전함을 향한 갈망이 있다. 나는 우리의 수많은 염원과 갈망이 우리의 진정한 모습, 회복되고 새로워진 세상에서 다시 살게 될 운명을 지닌 존재라는 실체를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168) 데이비드 베너, “완점함을 향한 추구는 영적 추구다. 단지 부족함이나 실수가 없는 것을 추구하는 것 이상이며, 순정한 이상을 향한 갈망이다. 이상과 완전함에 대한 추구를 모두 포기한 사람은 불쌍한 사람이다. 완벽주의적 갈망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우리의 결점과 한계에 대해서 기억하게 해 주는데, 만약 그런 기억의 과정이 없다면 우리는 지금은 잃어버렸지만 우리가 갈망하고 있는 낙원을 쉽게 망각하고 말 것이다.” (169)
완벽주의와 교만: 완벽주의의 또 다른 뿌리는 교만이다. 과도하게 높은 개인적인 기준을 제시하며 정확성, 질서, 체계를 지나치게 강조한다. 이는 사실 남보다 더 뛰어나려는 열망을 암시한다… 흑백논리 식 사고를 지닌 완벽주의자들은 자신에 대해서 지독하게 부정적으로 생각하다가 상황이 조금 나아지면 금세 자신의 뛰어난 점에 대해 교만해지는 롤로코스터를 경험한다. 낮은 자존감과 교만은 공존한다.
통제: 우리는 통제하고 싶어한다. 타락한 세상에서의 불안정감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우리는 자신이 유한하며 제한을 받고 있다는 사실, 또는 우리 자신보다 더 크신 어떤 분을 신뢰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하나님처럼 되고 싶다. 도로시 세이어즈, “교만은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하는 죄다. 교만은 인간 자신의 지혜와 욕구와 상상력으로 자신이 살아갈 기준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선언하는 죄다.” 필립 얀시, 기독교 신앙의 독특성은 은혜이다. 성육신, 부활도 다른 종교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이 값없이 조건 없이 우리를 찾아온다는 개념은 인간의 모든 본성과 상반된다. 프란시스 쉐퍼, 우리가 구원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우리는 단지 빈손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회개하는 마음으로 그 분의 용서와 사랑의 값없는 선물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동시에 그것은 가장 어렵다. 왜냐하면 우리는 교만하기 때문에 어느 누구에게도 심지어 하나님께도 빚을 지기 싫어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의 구원을 확보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하기 원한다. 그러나 기독교의 핵심은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은혜의 선물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177)
4. 변화의 시작
우리는 스스로 완벽해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기 위해서 완벽할 필요도 없다. (1) 현실을 직면하기: 완벽주의의 이해득실을 평가하라, 흑백논리적 사고방식을 인식하라. 이분법적 사고의 비합리성을 깨우친다. 일기를 쓴다. 대안적인 사고 방식을 실험한다. (2) 이상주의에서 현실로: 평균치를 목표로 한다. 날마다 조금씩 계획을 세운다. 총체적인 목표를 구체적인 작은 목표로 나눈다. 실패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다. 개별적인 상담과 관계 형성이 중요하지만 변화를 촉직하기 위해서 좀 더 넓은 교제권이 필요하다. 불완전함을 받아들이고 불완전함과 더불어 살아간다. 자기 안에 있는 갈망과 우선순위, 목표들에 대해서 충돌하는 목소리에 대항하여 하나님 임재 안에 조용히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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