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m Wright, Paul: A Biography, HarperCollins, 2018
톰 라이트,『바울평전』, 박규태 옮김, 비아토르, 2020
1. 열심
이갈 아미르, 이스라엘 라빈 총리 암살 (1995)
사울시대에 ‘열심’을 가장 강조한 텍스트 가운데 하나였던 마카베오 1서에서는 아브라함과 비느하스를 다룬 두 본문이 가까이 붙어 등장한다.하나님과 율법을 열렬히 따르던 이 소년은 이 모든 본문을 장래에 참조하려고 고이 간직했으리라. 그는 하나님과 토라를 열렬히 앙망하게 된다... 다소의 길거리에서 다른 민족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아주 똑똑히 알았던 이 소년이 다른 민족과 같은 행동을 하는 하나님의 백성의 생각에 역겨움과 매력을 동시에 느꼈다가, 비느하스의 열심히 보여주는 생각에 흥분을 느낌과 동시에 자극을 받았으리라고 상상한다... 비느하스와 엘리야를 함께 묶어 보면, 바울이 나중에 고백한 일 곧 그가 폭력을 쓰면서까지 열심을 보였던 하다한 사례가 설명된다. (65-66)
가말리엘은, 적어도 사도행전이 묘사한 모습을 보면, ‘서로 상관 말고, 각자 좋은대로 살아가자’는 정책을 지지했다. 예수라는 사람을 따르길 원하는 사람은 그렇게 하면 된다... 그러나 모든 증거를 보면, 가말리엘 문하의 영특한 다소 출신 학생은 이런 접근법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열심 때문에 반대 학파에 들어가 힐렐의 경쟁자인 샴마이를 따랐을 것이다. (71)
그 예언자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수치스러운 방법으로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지켜봄으로써, 그가 하나님을 모독한 사기꾼임을 단번에 분명히 밝혔다. 메시아가 십자가에 못 박히다니? 그런 메시아는 아무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 이 예수를 따르는 이들은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었다... 스데반은 성 밖으로 끌려나가 비 오듯 쏟아지는 돌에 맞아 온몸이 깨지고 부서진 채 죽고 말았다. 사울은 이 죽음을 당연하게 여겼다. 이것이 토라가 요구하는 행동이었다. ‘열심’은 이런 모습으로 나타나야했다... 바울은 새 비느하스, 새 엘리야로 나섰다. (74-76)
2. 다메섹
카라바조, 바울의 회심 (1600-1601) / 1월 25일 바울 회심 축일로 기념하는 서구 교회들
다마스쿠스의 곧은 길을 찾으면, 바브 샤르키를 만날 것이다. 이 거리는 옛 도시 중심부를 동에서 서로 가로지르는 고대 로마 도로의 일부다. 바브샤르키는 이제 더 긴 도로의 동반부이며, 이 도로 남족에는 유대인 구역이 있다. 다소의 사울은 완전히 눈이 먼 채 이 구역 어딘가에 있는 숙소로 이끌려 갔다. (101)
3. 아바리아와 다소
1세기에 ‘아라비아’는 넓은 지역을 아우르는 말이었다. 당시 아라비아는 시리아 동부로 조금 들어간 지역에서 남쪽으로 오늘날 요르단 지역을 가로질러 저 멀리 시나이 반도까지 아우르던 고대 나바테아 왕국을 가리키는 말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신약 성경이 이곳을 유일하게 달리 언급한 곳 가운데 하나 (갈라디아서)는 훨씬 더 자세한 위치를 우리에게 일러 준다... 시내산은 하나님이 불 가운데 내려오셔서 모세에게 토라를 주신 곳이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을 엄숙히 비준한 곳이기도 했다. 아바리아의 위대한 산 시내산은 그런 의미에서 시작의 장소였다... 시나이는... 엘리야가 들어간 곳이었다. 시나이는 다소의 사울도 같은 이유로 간 곳이었다... 바울은 자신이, 엘리야가 그랬던 것처럼, “아라비아로 떠났다가” 역시 엘리야가 그렸던 것처럼, “그 후 다메섹으로 돌아갔”다고 말한다. (114-115)
바울은 갈라디아서 1-2장에서 그의 복음이 예루살렘 지도자들을 거쳐 간접 전달받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받은 것임을 분명히 한다... 그는 이전에 받았던 사명을 넘겨주고 이제 새 사명을 받고자 아라비아로 갔다... 사울이 아라비아로 갔다가 되돌아 온 기간을 포함하여 그가 다메섹에서 보낸 시간은 3년이었을 것이며, 기원후 33년부터 36년까지였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118-119)
바울은 뒤이어 예루살렘으로 간다. 기원후 36년이나 37년이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바울은 10년이 더 지나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보낸 서신에서 자신이 베드로(아람어식 이름 게바)와 두 주를 함께 보냈으며, 다른 이들을 만나지 못하고 야고보만 보았다고 이야기한다. 이 만남은 바나바가 주선했다. (120)
그 뒤, 대략 36년부터 46년까지 10년 남짓 침묵이 이어진다... 사울이 가업에 종사하면서 스스로 생계를 꾸려가기 시작했다고 추측할 수밖에 없다... 유대 사회의 교사는 누군가를 가르쳐 생계를 꾸려 갈 기대를 아예 하지 않았다... 그가 하는 일은 고된 육체 노동이었다... 사울은 침묵하며 10년을 보냈다. 이 세월동안 그는 성경 성찰이라는 우물을 더 깊이 파고 들었고, 나중에 이 우물에서 그에게 필요한 물을 길어 올리게 된다...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가 부활하신 메시아에 관하여 그가 알게 된 ‘새 사실’로부터 거꾸로 되짚어 생각했으며, 거기서 다시 그 사실에 비추어 이스라엘이 간직해 온 성경과 전통의 세계, 그 진짜 종착지를 한번 보지도 못한 채 그 지점까지 더듬더듬 기어오고 있던 길고 어두운 그리고 종종 뒤틀린 이스라엘의 내러티브 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그는 창세기를 다시 읽었다. 출애굽기를 다시 읽었다. 토라 전체와 예언서, 특히 이사야서를 다시 읽었으며 시편으로 기도하기를 계속했다. (121-126)
그는 나중에 자신이 모든 생각을 포로로 사로잡아 메시아께 순종하게 만드는 법을 배웠다고 쓰는데. 이런 확신은 십중팔구 다소에서 보낸 침묵의 10년 동안에 갖게 된 것 같다. (134)
다소에 이미 예수 공동체가 있었는지, 사울도 이런 공동체 지체였는지, 그가 조금밖에 안 되었을 다른 지채들과 꾸준히 만나 예수의 이름으로 빵을 떼었는지 우리는 모른다. 이 세월 내내 사울이 홀로 외로이 예수를 믿은 사람이었으리라 생각하기는 어렵지만... 실마리를 전혀 제시하지 않는다. (136)
나는 성숙한 바울이 ‘그의 혈육 친척’을 보면서 그 마음에 늘 품었던 슬픔의 근원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믿는다... ‘믿지 않는 유대인’ 대중이 아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격심한 고통을 안겨 준 그 사람들의 이름을 안다... 슬픔에 찬 얼굴로 고개를 젓는 그들의 모습을 본다. 그의 어머니요 그의 아버지다. 그 부모가 자신에게 가르쳐 주었던 바로 그 기도 쉐마로 기도하는 목소리를 듣는다. 그의 부모, 그의 형제, 그의 친족은... 지극히 독실했던 아들이요 형제이며 조카인 사울이 어쩌다 그렇게 무시무시한 이단이 되어 버렸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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