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슬리 뉴비긴, 다원주의사회에서의 복음, IVP
1.포스트모던 시대의 복음
대학 4학년, 캠퍼스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점점 더 쉽지 않은 일처럼 여겨졌다. <순전한 기독교>에서 C.S. 루이스의 단순하고 명쾌한 변증은 호소력 있었고 당대에 많은 이들의 반향이 있었지만, 오늘 포스트모던 세대에게도 유효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학내 또래 친구들의 사고를 지배한지는 이미 오래되어버린 것 같았다. 강의실에서 진리를 붙들고자 속으로 씨름하고 있을 때, 백양로 곳곳에서 학생들에게 복음을 소개하고자 할 때, 더욱 그러한 생각이 들었다. 복음만이 유일하고 궁극적인 진리이라는 주장은 거대담론의 폭력이며, 철지난 소리같이 여겨지는 가운데, 나는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일까. 오랜 고민이었다.
그 때 만난, 레슬리 뉴비긴의 이 책은 내가 가지고 있는 고민을 정면으로 다루며, 이 시대 복음 증거가 어떠해야 하는지, 그 본질과 대안을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그의 주장의 중요성과 서구 사회에 미친 영향을 더 깊이 깨달은 것은 몇 년이 더 지나서였다.
1. 공적진리로서의 복음
포스트모던사회진리에 대한 문제
교회가 새로운 사회 질서를 위해서 최대로 기여할 수 있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의 새로운 질서가 되는 것이다. (Truth to Tell) 400
불행히도 오늘날 복음은 다른 모든 종교적 주장과 마찬가지로 진리의 주변에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복음이 정말 사실이라면, 그것은 모두에게 사실이어야 한다. 계몽주의 기간동안 발생한 ‘문화의 변혁’ (conversion of a culture). 모든 것을 의심하는 이성의 영원한 진리들은 결국 허무주의로 귀결된다.
복음은 자기 성취를 위한 현대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전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선교사는 복음을 문화에 도전하면서 좀 더 고차원적인 충성을 강요하는 침투적인 세력으로 본다.
서구 문화와 동일시 되었던 기독교. 힌두교적 사고에 의해 형성된 언어로 기독교 교리들을 생각하였던 것. 혼합주의. 힌두교 사원에서 예수를 예배하는 것. 힌두교의 세계관 안에 끼여 들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
복음은 다원주의가 지배적 이데올로기로 군림하는 사회의 한 요소로 수용될 수 없다. 교회는 각 개인을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도록 하는 일만을 자신의 역할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하나님 나라, 교회는 공적 진리에 대한 우위권을 되찾아야만 한다.
2. 타당성 구조에 대한 도전
에 대한 도전: 문화에 대한 도전을 뉴비긴이 이렇게 해석하고 있는 것!!
그 이야기가 우리의 실제적인 타당성 구조가 되어야 한다.
3. 복음의 해석자로서의 공동체
2.5 복음을 믿는 회중, 공동체에 대한 확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하는 것.
그가 성경에 관해서 무엇을 믿는가를 묻기보다 그가 성경을 가지고 무엇을 하는지 묻는 것이 더 중요하다.
뉴비긴의 기본적인 관심. 상황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아닌, 믿음을 가진 회중을 양육하는 것 -
유일한 실마리. 유일하고 하나뿐인 복음의 진정한 해석자가 되는 ‘복음을 믿는 회중’
그의 교회론은 공동체에 대한 확신!! 에서 시작된 것이다.
"교회의 선교적 행위는 복음의 주석이다."
사랑으로 기억되는 그의 성품, 복음에 대한 올바른 자신감,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만남
그의 삶의 가치관을 바꾸어 놓던 것, 레슬리 뉴비긴을 주목하게 하는 이유이다.
2.3 합당한 변증으로서의 복음 내러티브
과학의 자리: 기독교를 합리적인 신앙이라고 권하면서 전하는 접근법의 포기
누구의 기준에 의해 합리적인가, 복음보다 좀 더 근본적인, 복음을 증명하는 어떤 것이 있다고 전제하게 되는 것이다.
합당한 변증의 형태 - 복음 그 자체를 전하는 것 - 변증의 자리에 서는 것 - 우리의 최선을 아시는 하나님
2.4 공적 진리로서의 복음
서구 교회가 경험한 복음에 대한 멸시를 한국 사회 안에서 경험한다. 그러나 그것은 계몽주의가 가져온 진리 차원의 회의가 아닌, 교회의 부패에 대한 조소라는 점에서 더욱 비극적이다. 한국 교회의 지향이 바뀌어야 한다.
복음을 사적 영역으로 축소시킬 수 없다.
2. 복음의 해석자로서의 회중
1.1 공적 진리에 대한 우위권
이데올로기적 진공 상태는 없다.
1.2 공동체
어떻게 복음이 믿을 만한 것이 될 수 있으며, 어떻게 사람들이 인간 역사에서 최종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분에 의해 대변된다는 것을 믿게 될 수 있단 말인가? 유일한 해답, 곧 복음의 유일한 해석은 복음을 믿고 그에 따라 살아가는 이들이 모여 이루는 회중에서 얻을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 책이 아닌 공동체를 만드신 것
그 공동체의 중심에 그 분의 말씀과 행하심, 그 분이 베푸신 성례를 기억하고 반복해서 시행하는 것
찬양, 진리, 이웃, 만인 제사장, 서로 책임- 개인주의의 극복, 희망 “실패하지 않는 소망”
2. 해설
레슬리 뉴비긴, 인도 선교사로 대부분의 삶을 보냈던 그는 은퇴한 이후부터 영국과 미국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의 경력은 대부분 세계교회협의회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복음주의자들이다.
2.1 복음에 대한 멸시
“복음에 대한 반대보다 더 마주 대하기 힘든, 복음에 대한 차가운 멸시” 다원주의 사회에서의 복음 395
The Other Side of 1984: Questions to the Churches. 서구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그들이 이방적인 문화 가운데 살고 있음을 깨닫게 해 주었고, 그들에게 진정으로 선교적인 접근법을 개발할 것을 촉구했다.
“모든 생각은 마음 속의 고통과 함께 시작된다” _ 레슬리 뉴비긴.
“물론 여러분은 춥지요. 하지만 여러분은 불이 꺼져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나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 398
2.2 복음과 문화 네트워크
영국교회협의회는 교회와 사회의 당면 문제들을 논의하기 위해서 전국 회의를 구상했다. 계획되었던 회의는 8년뒤인 1992년에 열렸다. 이 때는 이미 일종의 운동과 같은 형태가 ‘복음과 우리 문화’라는 프로그램으로 발전해 있었다. 열정적인 학자들과 목사들 그리고 사려 깊은 평신도 그룹이 힘을 모아서 서구 사회를 어떻게 하면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의논하였다.
프린스턴 대학의 워필드 강좌를 맡아 달라는 요청을 받고서 뉴비긴은 그의 책자를 한 권의 작은 책으로 확대시켜서 Foolishness to the Greek라는 제목으로 출간하였는데, 이 책을 통해 그의 생각이 미국에 전해졌다.
예수님을 우리 문화의 세계관 속에 끼워 놓고 있다.
우리의 세계관을 도전하시는 그리스도
나는 상당히 많은 복음주의적 기독교도 쉽사리 자신과 자신의 구원에 집중해서, 하나님의 영광은 거들떠보지도 않게 될 수도 있음을 보았다. 그 때의 체험이 있은 후부터... 절대 죄와 구원의 문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았다. 대신 나는 하나님과 그 분이 하신 일에 대해서 말했다.
서구 교회가 경험한 복음에 대한 멸시를 한국 사회 안에서 경험한다.
그러나 그것은 계몽주의가 가져온 진리 차원의 회의가 아닌, 교회의 부패에 대한 실망과 멸시라는 점에서 더욱 비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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