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널드 사이더, 『그리스도인의 양심선언』, 이지혜 역, IVP, 2005
The Ronald J. Sider, Scandal of the Evangelical Conscience: Why Are Christians Living Just Like the Rest of the World?, Grand Rapids, MI: Baker Books, 2005
디트리히 본회가 값싼 은혜라고 불렀던 것, 우리가 복음을 죄사함으로 축소시킬 때 값싼 은혜라는 결과가 생겨난다. 즉, 구원을 지옥에 대비한 개인 화재 보험쯤으로 생각하거나 인간을 영혼으로만 제한한다거나 죄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반쪽만 이해했을 때, 우리 문화의 개인주의, 물질주의, 상대주의를 그대로 받아들일 때 이런 일이 생겨난다. 또한 교회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과 실천이 부족할 때, 성격적 세계관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할 때 이런 일이 발생한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규명하고, 어떻게 하면 복음과 구원, 인간과 죄, 교회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좀 더 온전하게 이해하고 살아낼 수 있는지를 모색해야 한다. (56-57)
대가를 치르지 않는 믿음, 복음주의 마케팅 담당자들은 영원한 구원을 다음과 같은 간단한 공식에 동의하면 누구나 얻을 수 있는 공짜 선물인 양 뿌려 댔다. 사람들은 무료 화재 보험을 마다할 리가 없다. 이 거래는 삶의 변화에 대해서는 조금도 거론하지 않는다. 그 결과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가는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을 양산할 뿐이다. (57 참고)
복음과 구원에 대한 편협하고 비성경적이며 환원주의적인 이해야말로 우리 문제의 핵심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너무나 많은 복음주의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복음의 가장 중요한 측면은 ‘죄사함’이라는 인상을 주고 있다... 복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죄사함을 받는 것에 불과하다면, 복음을 받아들인 후에도 죄된 생활을 청산하지 않은 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구원이란 삶을 전적으로 재정립하는 일생일대의 혁신이 아니라 천국에 가는 편도 기차표에 불과하며 사람들은 그 곳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얼마든지 지옥같은 삶을 살 수 있다. (58-59 참고)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지 않은 채 구세주로만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리스도와의 진정한 인격적 관계는 우리 죄악된 자아에 철저한 변화를 가져온다. 신약 성경에서 복음과 구원은 죄사함보다 훨씬 풍성한 의미를 담고 있다.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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