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한국 교회의 열정과 부흥은 교회사에서 유례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질적으로 양적으로 폭발적인 발전을 이룬 비결은 바로 열정적인 부르짖는 기도이며 통성기도였습니다. 과거에 한국교회 많은 집회에는 감격이 있었고 회개가 있었으며 열정적인 통성기도와 부르짖음과 눈물이 있었습니다. 부흥회에는 항상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으며 그것은 천국의 축제와 같았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그러한 열기는 이제 슬픈 지난날의 추억이 되고 말았습니다. 대부분의 예배들은 조용하게 드려집니다. 많은 성도들이 졸거나 공상을 하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예배가 끝나면 그들은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예배를 드릴 때나 예배를 마치고 난 후나 주님과 천국에 대한 간절하고 뜨거운 열망과 사모함을 발견하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이렇게 한국교회는 시들해지게 된 것일까요? 그것은 아주 간단한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소리를 잃어버렸습니다. 이 시대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통성기도를 할 줄 모릅니다. 부르짖어 기도할 줄 모릅니다. 그러한 기도를 한심스럽고 유치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교회에서 소리를 잃어버린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전혀 인식하지 못합니다. 예전엔 새마을 노래의 가사에도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하면서 새벽이 되면 교회에서 새벽종 울리는 종소리를 듣고 일어났는데, 세상의 악한 영들은 그 소리를 빼앗아 가버렸고 정확하게 새벽종 소리가 멈추면서부터 한국교회의 성장도 주춤거리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부흥과 능력과 하늘의 역사는 부르짖는 기도에서 나옵니다. 부르짖는 기도는 하늘문을 여는 기도이며 영적인 권능의 세계가 열리는 열쇠가 되는 기도입니다.
2.부르짖는 기도는 성경의 명령이며 약속입니다. 성경에는 부르짖어 기도하라는 수없이 많은 명령이 있으며 부르짖는 기도에 대한 응답의 약속과 그 사례에 대한 수백 군데의 언급이 있습니다. (렘33:3, 렘29:12-13, 시22:44, 시31:22, 시81:7, 시86:7, 시50:15) 하나님은 모든 아름다움과 풍성함의 근원이시므로 하나님을 알고 경험할 때 그 모든 풍성함은 자연히 따라옵니다. 그래서 영혼의 눈을 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먼저 구하고 사모합니다. 아직 영적으로 어리고 미숙한 이들은 여러 가지 현실적인 많은 것들을 위해서 기도하지만 주님을 알기 위해서 기도하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알고 찾으며 경험할 수 있을까요? 바로 그 구하고 사모하는 방법이 곧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언급된 대부분의 기도는 부르짖는 기도입니다. 잠잠히 기도하라는 구절이 있기는 하지만 부르짖으라는 내용에 비하면 정말 얼마 되지 않습니다. 부르짖는 기도는 성경의 명령이며 약속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명백한 하나님의 약속을 무시하고 사람들이 간절하게 부르짖지 않는 것일까요? 그것은 심히 이상한 일입니다.
3.부르짖음에서 하늘의 구원이 시작됩니다. -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명목상으로만 주님을 섬기며 마음속으로는 세상을 사랑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 결과로 각종 죄의 습관에 사로잡히고 온갖 좋지 않은 것들에 중독이 되어 헤어나지 못하며 근심과 염려와 두려움, 분노 등에 시달리고 경제적으로, 신체적으로 환경적으로 많은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진심으로 주님을 섬기지 않으면 그들은 세상의 왕, 즉 지옥의 왕을 섬기며 그들의 지배를 받고 살게 되어 지옥적인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 그러나 그 해결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하늘의 구원과 권능을 끌어당길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4.우리는 문제가 있을 때 마음에 어려움이 있을 때 하나님께 나아가서 부르짖을 수 있습니다. 응답은 부르짖어서 오는 것이며 가만히 있으면 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어찌하든지 하나님의 들으심과 응답이 올 때까지 부르짖어야 하며 처음부터 가만히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기복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것을 요구하시며 그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그러한 기도에 응답하는 것을 즐거워하십니다. 그러면 언제까지 얼마나 부르짖어야 합니까? 부르짖어 기도하다 보면 어느 순간이 되면 마음 속에서 '이제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부르짖지 말아라. 지금은 나의 시간이다. 내가 역사 하리라. 이제는 부르짖지 말고 마음을 시인하며 감사와 찬양을 드려라'하는 메시지가 떠오릅니다. 그때까지입니다. 그때까지 부르짖어야 합니다.
5.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원망하지 않고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연약한 자들은 상황이 좋아지면 찬양을 하고 감사를 하며 온갖 난리를 꾸미다가도, 조금만 상황이 어려워지면 푸념하고 원망하며 항상 다른 사람들에게 책임을 전가합니다. 그들은 고민하고 괴로워하기는 하지만 그 짐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문제와 짐을 부르짖어서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들은 항상 편안함을 느낍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두려워하고 걱정해도 끄떡없는 사람들이 바로 부르짖어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온갖 염려와 근심에 잠겨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고민을 들어줄 상담자를 찾아다니기만 할 뿐 부르짖어 기도하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해결책은 바로 이것입니다. 부르짖어서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부르짖어서 스스로 하늘 문을 여는 것입니다.
6. 부르짖는 기도는 하늘 문을 여는 중요한 비밀이며 열쇠이기는 하지만,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갈망이 동반되지 않은 부르짖음은 그냥 비명소리일 뿐 아무런 유익이나 효과가 없습니다. 부르짖는 것은 외적인 표현이고, 중요한 것은 그 내적인 마음의 상태이며 동기입니다. 많은 훈련과 정화를 통하여 그 영혼이 아름답게 되어야 깊은 곳에서 강렬하면서도 아름다운 부르짖음이 나옵니다. 훈련되고 정화된 사람의 부르짖는 소리는 아주 듣기에 아름다우며 하늘의 영광이 임하며 권능과 생명이 충만하게 흘러나오게 됩니다. 하지만 부르짖음의 초기에는 소리가 요란하고 거칠며 소리를 통해 어두운 악한 기운이 흘러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소리는 아주 듣기가 싫습니다.
7.부르짖는 기도는 강렬하고 뜨거운 기도입니다. 흔히 기도를 꼭 그렇게 소리를 지르면서 요란하게 해야 하느냐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조용히 묵상하며 기도해도 됩니다. 묵상기도는 깊은 기도이며 아름다운 기도이고 달콤한 기도이며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빛의 기도이기는 하지만 뜨거운 기도는 아닙니다. 활활 타오르려면 빛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불이 필요합니다. 확 태워버리려면 불이 있어야 합니다.
마가 다락방의 기도는 아주 강렬하고 뜨거운 통성기도였습니다. 모두 뜨거운 마음으로 부르짖으며 주님의 약속을 기다렸습니다. 성령은 불길같이 임합니다. 뜨겁게 부르짖을 때 감옥문이 열리고 땅이 흔들리며 성령의 능력이 임합니다.
8. 부르짖는 기도는 수준이 낮은 기도인가? 지적인 신자들이 대체로 부르짖는 기도를 우습게 여기고 무시하면서 무식한 사람들이나 그렇게 기도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주님을 체험하기보다는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기도를 들어보면 아주 답답하고, 그들은 대표기도를 두려워합니다. 자신 있고 담대하고 강한 발성으로 기도하지 못하기 때문에 기도하기 전에 원고를 작성하거나 밤새 고민하느라 잠을 못 이루기도 합니다. 그러나 부르짖어 기도하는 사람의 대표기도는 강하고 충만하며 듣는 이들의 가슴을 후련하게 합니다. 그것은 헌신의 영과 주님을 사모하는 영을 불러일으킵니다. 부르짖는 기도는 가장 아름답고 놀라운 기도이며 영광으로 가득한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간절한 염원과 소망이 담긴 기도입니다. 그것은 세련되고 교양이 넘치는 기도는 아닐지라도 진실하며 거룩하며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9.부르짖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즉각적으로 응답해주시는 기도입니다. 그것은 부르짖는 기도가 낮고 상한 심령으로 드리는 겸손한 기도이기 때문이며 그것은 눈물로 드리는 애통하는 기도이며 티끌같이 낮아져서 땅바닥에 바짝 엎드려지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부르짖으며 기도하면 얼굴이 찡그려지게 됩니다. 얼굴이 구겨지는 것입니다. 찌푸리고 상한 얼굴은 하나님께 간절함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표식입니다.(렘5:3)얼굴은 얼, 영혼이 담겨있는 굴, 즉 구멍이므로 그 사람의 마음과 심령의 상태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려움이 있을 때 얼굴을 찡그리며 슬피 울고 부르짖으며 낮은 자세로 구하는 자녀에게 침묵하지 않으십니다. 부르짖지 않는 것은 교만한 것입니다. 징계를 경험하고 어려움이 있을 때 하나님께 나아가서 부르짖지 않고 막연하게 어떻게 되겠지... 하고 있는 것은 교만한 짓입니다.
10.하나님이 귀가 없으신가요? 꼭 그렇게 소리를 질러야만 하나님이 들으시는가요? 조용히 속으로 기도해도 하나님은 다 듣지 않으실까요? 맞습니다. 그러나 부르짖는 것은 하나님 들으시라고 부르짖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해서 부르짖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영혼을 충만케 하며 하늘 문을 열어 하늘의 구원과 영광이 우리에게 내려오게 합니다. 분명하게 소리를 내서 우리의 마음을 표현하고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복인지 모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부르짖어 기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두 부류만 있을 뿐입니다. 그 두 부류의 하늘의 은총과 영적 깊이의 차이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큽니다.
11.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910) 왜 소리를 내야 하는가? 아무리 계약서를 잘 작성해도 마지막에 도장을 찍거나 서명을 하지 않으면 계약서의 효력이 없는 것처럼, 소리는 맨 마지막에 도장을 찍는 것과 같습니다. 소리는 영적인 것이, 이론이나 개념이 실제가 되는 과정입니다. 입술의 시인이 구원의 완성은 아니지만, 구원의 시작입니다. 영혼은 생각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우리는 육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소리를 통해서 육체를 훈련하고 다스려야 합니다. 마음은 생각을 통해서 움직이지만 육체는 소리를 통해서 움직입니다.
12.소리는 물질계에서 구원과 복을 가져옵니다. - 이 땅의 모든 보이는 복들은 배에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배에서 생명인 사람이 잉태되고 나오며 배에서 모든 물질적인 복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어떤 사람이 물질적인 복을 받기를 원하거나 영적인 은사들을 받기를 원한다면 그는 배로 부르짖는 기도를 훈련해야 합니다. 심장은 하늘과 관련이 있으며 배는 땅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써 배에 힘을 주고 부르짖으면 각종 은사나 물질이나 땅에 속한 복이 임하게 되어 있습니다. 입을 열고 소리를 낼 때 우리는 물질적인 은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가난해도 침묵을 지키는 사람은 계속적으로 가난할 것입니다. 그러나 소리를 내서 부르짖어 기도하는 사람은 가난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며 물질적인 풍성함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13. 반드시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당신의 입술을 통해서 영적인 힘과 능력이 당신에게 임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당신이 원망을 하게 되면 원망의 영과 기운이 당신에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자식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고백하면 자녀들에게 더 강한 불순종의 영들이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삶이 힘들다고 고백하면 당신의 삶에 더 많은 재앙의 역사들이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기도할 때만 언어에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평소에 말하는 모든 말에 능력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 지금 당신이 겪고 있는 현실의 삶들은 과거에 다 당신이 입술로 시인하고 고백하며 만들어낸 것입니다. 어두움의 고백을 하지 말며 사랑과 신뢰와 희망과 감사에 대한 고백과 시인을 끊임없이 하십시오.
14.소리는 사람의 안에 들어오며 사람의 안에서 영적인 작용을 일으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말하는 것을 조심해야 할 뿐 아니라 소리를 듣는 것을 아주 조심해야 합니다. 소리를 분별하지 않고 소리에 대해서 조심하며 자신을 방어하지 않는 것은 일종의 자살행위입니다. 악한 소리는 악한 능력이 있으며 악한 영향을 끼치고 아름다운 소리는 아름다움의 능력이 있으며 좋은 영향을 끼칩니다.
15.여리고성은 소리로 인하여 무너졌습니다. 여리고성을 빙빙 돈 것은 여리고와 그 배후에 있는 악한 영들의 세력을 포위하고 결박하여 무력화 시키는데에 의미가 있습니다. 소리는 그 결박한 대상을 파괴하는 힘이었습니다. 빙빙 도는 것이 상대방을 묶는 것이라면, 소리를 지르는 것은 그 대상에게 폭격을 가하는 것입니다. 결박은 상대방의 행동을 제한하는 것이며, 소리는 직접적으로 파괴하는 것입니다. 강력하게 외치는 소리는 어떤 대상을 깨뜨리는데 결정적인 힘을 행사합니다.
16.악한 영들은 소리를 무서워합니다. 그들은 강력하게 찬양을 드리는 소리를 무서워하며 강력하게 소리 질러 기도하는 소리를 두려워합니다.
영들은 소리에 아주 민감합니다. 영적으로 예민한 사람들도 소리에 민감한 것이 보통입니다. 평소에 분명하게 소리를 질러 기도하고 소리를 높여 찬양하는 사람들에게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들은 자신감을 가지고 있으며 영적인 전쟁에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17.오늘날의 기독교는 너무 소리가 없습니다. -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배를 드리지만 예배에 소극적으로 참여할 뿐입니다. 기껏 찬송을 부르거나 사도신경, 교독문을 형식적으로 할 뿐입니다. 이것은 아주 비극적인 일입니다. 왜냐하면 영성의 눈뜸과 개발에는 소리를 내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일이며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입을 벌릴 때 사람의 영혼이 움직이기 시작하며 하늘 문이 열리며 영광스러운 역사가 시작됩니다.
기도소리는 참 좋은 것이고 찬양소리도 참 좋은 것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 소리가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해도 자기 스스로 직접 소리를 내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남의 기도소리를 백날 듣는 것보다도 자기가 한 마디 소리를 내는 것이 훨씬 영적 성장에 유익입니다.
18.생명이 있는 곳에는 항상 움직임이 있고 소리가 있습니다.- 노인들은 소리를 시끄러워 하고 아이들은 항상 시끄럽게 떠듭니다. 노인들이 떠드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지치고 힘들어서 소리를 흡수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영이 강하고 충만할수록 그 안에 많은 소리를 담을 수 있습니다. 성도들도 영이 강하고 충만하면 설교를 잘 받아들이지만, 영이 약하고 병들게 되면 더 이상 소리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소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죽는 것을 연습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빨리 무덤 속에 들어가 조용히 쉬고 싶어합니다. 고요함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 가운데 있을 때에만 생명입니다. 그렇지 않은 일반적인 대부분의 고요함은 죽음입니다.
19.사람의 안에는 소리를 넣을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영혼이 강건하고 충만한 사람은 소리의 공간이 넓습니다. 연세가 많은 분들이 새로 나온 찬양이나 경배곡에 도무지 익숙하지 않은 것은 이미 찬송가를 오래 부르면서 소리의 용량이 꽉 찼기 때문에 새 노래가 들어갈 공간이 없어서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님의 영광보다는 자기에게 익숙한 것을 좋아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이기는 사람이 되려면 소리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소리의 용량이 적으면 사소한 소리에도 상처를 받고 시험에 듭니다. 우리가 소리를 내소 소리를 지르면 소리를 내는 만큼 소리의 용량이 증가합니다.
20.십자가, 보혈, 은혜, 주님의 사랑, 성경의 말씀 등등... 아무리 많이 알아도 소리를 내어 표현하지 않으면 그러한 진리들은 삶에서 감격으로 다가오지 않고 그저 무덤덤 할 뿐입니다. 말하는 대신 듣기만 많이 하면 생각만 복잡해집니다. 언어로 마음을 나누지 않는 사람은 다른 이들과 온전하게 하나가 되고 연합하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사람을 이끌고 인도하는 중요한 파워는 소리에서 나오며 사람들을 압도하고 도전을 주는 것도 소리의 힘입니다. 항상 어디에서나 무시를 당하고 공격을 받는 사람은 소리가 약하고 마음이 약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모든 무예에는 기합이 있습니다. 그것은 흐트러진 마음을 바로 잡고 정신을 통일시키며 강한 마음을 갖게 합니다. 분명하게 소리를 내어 강하고 힘차게 기도하세요.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21.사역자들이 '잘 가르치는 사람'만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부르짖어서 하늘 문을 열고 하늘의 열쇠를 얻어 강력한 영권의 사람이 되어서 그가 인도하는 예배에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하게 임해야 합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예배를 사모하고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소리는 그 사람의 영혼을 보여 줍니다.
소리는 그 사람의 영적 상태와 수준을 보여 줍니다.
소리는 소리 자체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영감과 충격을 주는 소리, 중심을 토하는 소리만이 사람들에게 충격과 감동을 주게 됩니다.
사역자는 위로자이기도 하지만 더욱 리더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따르는 리더가 되려면 마음과 심령이 강해야 합니다.
22. 우리가 기도하고 훈련해야 하는 소리는 영감이 충만한 소리입니다. 우리는 성악가나 웅변가가 되려고 부르짖는 것이 아니고, 소리를 통해서 하늘을 열고 하늘의 은총을 얻는 사람이 되고 기도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 부르짖습니다. 심령이 맑은 사람은 소리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찬양하고 노래하고 연주를 하고 춤을 추는 이들 가운데에도 목소리는 감미롭고 듣기 좋지만 그 속에서 음란함과 완악함과 각종 더러운 영들이 흘러 나와서 머리를 아프게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노래를 잘 하는지 모르지만 심령은 마비되어 있습니다.
23.부르짖는 기도는 문제의 해결이나 기도응답 자체보다 영혼을 깨우고 각 사람의 영혼을 일으키는 측면과 더 많은 관계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환경이 먼저 풀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먼저 그 영이 풀리면 환경은 자연히 열리게 됩니다. 물질 문제든, 건강문제든, 인간관계의 문제든 영이 강해져서 영적으로 회복이 되면 문제는 저절로 풀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오직 영혼이 열린 사람, 하늘을 열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부르짖는 기도는 영계를 열며 하늘 문을 여는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부르짖는 기도는 영감의 시작이며 능력의 시작입니다. 소리가 은사와 능력의 비결이며 하늘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24.말씀은 문자가 아니고 소리입니다. 부르짖는 기도와 발성기도를 싫어하는 사람은 대체로 기도 보다 말씀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무식하게 떠들고 소리 지르며 기도하는 것보다는 조용히 말씀 앞에서 묵상하고 있는 모습이 거룩하고 영적이며 성숙된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는 기본적인 오해가 있는데, 말씀을 조용히 묵상하고 관찰하고 연구하는 문자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은 정지되어 있는 문자가 아니고 소리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이란 연구할 때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소리내어 외칠 때 그 말씀의 능력과 역사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묵상할 때 사람 안에 스며들고, 그것을 외치고 선포할 때 말씀이 흘러 나와 능력이 됩니다. 말씀을 묵상하여 마음의 곳간에 조용히 모셔두지 말고 그것을 꺼내어 사용해야 합니다.
25. 통성기도는 영감으로 하는 기도입니다. 처음 교회에 왔거나 통성기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통성 기도 하는 모습을 보면 정신이 하나도 없고, 같이 하자고 하면 기절할 지경이 됩니다.
사람들은 먼저 머리에 생각을 한 다음에 생각을 정리해서 말을 하게 되는데, 통성 기도는 생각하기 전에 그냥 안에서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통성 기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겁이 나지요.
철저하게 논리적인 백인들이나, 백인들의 체재에서 공부를 한 목회자들도 생각 없이 터져 나오는 통성 기도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통성 기도는 논리나 이성으로 하는 기도가 아니라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서 소리를 밀어내서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슨 말을 하나 머리로 생각하지 말고 그저 입술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냥 입을 벌리고 입에서 소리나 나오는 대로 소리를 내면 됩니다. 거기에는 정해진 각본도, 리허설도 없습니다. 그저 강렬한 열정에 사로잡혀서 자신을 쏟아 붓는 것입니다. 통성 기도에 익숙해지면 기도를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26. 경건하게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절제, 인내, 고난, 고행, 침묵 같은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웃고 떠들고 즐겁게 사는 것은 세상적이며 경박한 삶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충분하게 소리를 지르며 기도하지 않고 고요하게 예배를 드리고 고요한 침묵으로 기도하는 교회는 대체로 우울하고 어둡고 수군수군하고 문제가 많습니다. 그것은 경건한 신앙생활과는 다른 것입니다.
부르짖어 기도하며 예배 중에 요란하게 기도하고 찬송하는 교회는 대체로 밝고 명랑하며 웃고 즐거워합니다. 문제가 있어도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니, 문제도 맥을 못 춥니다. 침묵기도와 묵상에 익숙한 사람은 어두워지기 쉽습니다. 그것은 경건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눌린 것입니다. 우울하고 괴로운 것은 충분하게 소리를 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종교들은 다 조용하고 고요한데, 기독교는 왜 이렇게 요란하냐는 소리에 기죽지 마십시오. 살아있다면 요란한 것이 정상이고, 죽어 있다면 고요한 것이 정상입니다.
27.. 변비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질병도 그 사람의 마음의 표현인 것을 이해하십시오. 우리에게 다가오는 사건들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체적인 약함도 그 영혼의 특성입니다. 변비가 심한 사람들의 특징은 생각이 많고 상처가 많지만 잘 표현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안에 쌓이는 것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마음에 변비가 걸리면 몸에도 변비가 걸립니다.
변비는 먹은 것을 잘 내보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의 영혼의 특성을 보여 줍니다. 그들은 스트레스를 잘 받지만 그것을 마음속에 담아둡니다. 그러한 영혼과 마음의 특성이 몸에 변비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입으로 생각을 합니다. 즉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즉시 입으로 나와야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마음 속에 무엇을 담아두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은 절 때 변비에 걸리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반대로 자주 설사를 합니다.
28. 발성이 부족한 묵상은 어두운 의식을 가져온다 - 발성기도를 전혀 하지 않고 오직 묵상기도와 묵상에 익숙해진 이들은 점점 더 영혼이 섬세해지며 약해집니다. 영적으로 활력이 부족해지고 침체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래서 사물을 어둡고 비관적으로 보게 됩니다. 한국교회가 약해지고 무디어진 중요한 이유중의 하나가 부르짖는 새벽기도가 새벽 큐티로 바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발성과 묵상 어느 쪽에 치우쳐 있느냐가 그들의 의식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발성이 부족하면 생각과 성향이 어둡고 우울해집니다. 항상 힘들다, 어렵다고 말하며 징징거리는 이들이 참으로 많은데, 그보다 더 힘든 상황에서도 즐겁게 사는 불신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29.사람은 누구나 상처를 받습니다. 상처는 나쁜 기운이 몸 안으로, 영혼 안으로 침투하는 것입니다. 영혼의 힘이 약하고 방어하는 힘이 부족한 사람은 외부의 나쁜 에너지가 쉽게 침투하게 되어 상처받는 일이 많아집니다. 사람 안으로 들어오는 상처나 고통, 에너지는 '소리'를 통해서 들어옵니다. 악한 생각들, 근심, 염려, 미움과 같은 생각들도 사람의 영혼을 어둡게 하고 더럽히는 근원이며 통로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소리는 그것들보다 더 강렬하며 직접적으로 사람을 더럽히고 어둡게 하며 상처와 충격을 주며 좀 더 강력하게 사람을 파괴하는 힘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음악이나 소리는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들, 식물들, 심지어 물에게까지도 좋은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사람의 입 기운에는 놀라운 힘이 숨겨져 있습니다. 아름다운 고백과 사랑의 고백과 믿음의 시인을 통해 천사들의 도움과 축복의 통로가 되는 기운이 입에서 흘러나옵니다. 또한 비난과 잔소리와 공격적인 말과 원망이 말과 상처를 주는 말을 하면 그 순간 입에서는 독 기운이 흘러나옵니다.
30.기도를 배우기 시작할 때 먼저 입으로 소리를 내서 기도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무리하지 말고 적당히 어느 정도의 소리를 내어서 하다보면 기도의 영이 임하고 기도에 주님의 은총과 감동이 임하면 좀 더 강력하고 간절한 기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발성기도는 몸을 사용하여 드리는 기도이고, 묵상기도나 침묵기도는 마음과 영을 사용하여 드리는 기도입니다. 기도에는 전투가 있습니다. 기도를 못하게 방해하는 악한 영들 물리쳐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강력한 소리를 통해서 악한 세력을 파괴한 후에 주님의 깊으신 임재로 나아가야 기도의 깊은 맛과 기쁨과 행복감을 경험하게 됩니다.
31.부르짖는 기도는 생기가 넘치는 사람을 만든다.-소리를 내는 것은 영혼의 운동입니다. 영혼을 운동시키지 않고 누워있게만 하면 당연히 영혼이 서서히 약해지고 무기력해집니다. 그렇게 되면 마귀와 싸울 수 없고, 사소한 일로 염려하고 두려워하며 매사에 의욕을 잃고 소극적인 사람이 될 것입니다. 쉽게 지치고 피곤하고 졸리고 한숨을 쉬면서 매사에 일을 미루고 인간관계를 두려워하고 활기가 부족하여 사람을 리드하지 못하고 항상 끌려 다니게 됩니다. 영적 활기가 부족한 사람은 교회의 일이나 봉사하는 일도 힘이 듭니다. 조용한 교회에서는 아무도 일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요란한 교회는 일꾼들로 넘칩니다. 부르짖어 발성으로 기도하고 소리를 내어 당신의 영혼을 운동시키십시오.
32.조용한 예배, 조용한 교회에는 활력이 없다. - 교회의 크리스마스 행사는 모두의 마음속에 특별하게 기억됩니다. 원가 유쾌하고 설레기도 하고 흥분되고 즐거운 분위기가 가득합니다. 교회에 사람들이 들락거리고, 청년들은 장식을 하고, 성가대는 칸타타를 준비하고... 찬양을 하고, 춤을 추고, 율동연습을 하고, 그러다가 틀리면 까르르 웃고... 거기에는 소리가 있고 아우성이 있고 웃음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행복한 흥겨움이 있습니다. 집에서도 아이들의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야 사람 사는 것 같지요? 소리가 있고 외침이 있는 곳에는 뜨겁고 강렬한 영의 흐름이 있으며 사람들은 그 달콤한 분위기에서 떠나는 것을 몹시 싫어하게 됩니다. 소리는 사람을 끌어당기고 적막은 사람을 쫓아냅니다. 귀신들은 소리가 없고 빛이 없는 곳을 찾아다닙니다. 오늘날 교회는 소리를 되찾아야 합니다.
33.소리에는 치유가 있다 - 조용한 교회에는 아픈 사람들도 많고 문제도 많습니다. 그러나 평소에 통성으로 기도하며 활발하게 소리를 표현하는 교회는 육신적인 강건함이 있습니다. 그것은 소리의 표현, 소리의 흐름에 치유의 능력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특별히 사랑하시는 교회와 성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제한하는 교회가 있고 주님을 표현하는 교회가 있을 뿐입니다.
영적 세계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고 다만 마음이 선하고 순수하기만 한 목회자와 사모가 사역에 시달리다가 정신질환에 이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경우에 사역자들은 성도들로 인하여, 사람들로 인하여 목회에 회의가 오고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배후에 있는 악령들에게 폭격을 당한 것입니다. 강건하고 힘있는 목회를 하려면 배후의 악령들을 깨부수는 강력한 소리를 내야 합니다.
34 소리의 힘은 영혼을 제압한다 - 소리가 강한 사람은 일반적으로 대인관계가 좋으며 친구들도 많고 사이도 원만한 편입니다. 소리가 약한 사람은 대인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리가 약하고 심령이 약한 사람은 남에게 잘해주면서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고 남에게 무시를 당하고 상처를 받게 되어 마음 문을 닫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연약함은 사악함을 끌어오는 힘이 있어서 악성을 일으킵니다. 강함이 결여된 선이란 비참한 것이며 악과 같은 것입니다. 심령이 강건한 사람이 되면 그 강함이 자동적으로 상대방 안에 있는 악을 제압함으로 상대방의 악과 강퍅함은 결박되고 제압되어 상대방의 안에 숨겨져 있던 선과 부드러움이 나타나게 됩니다.
35. 예수님은 날마다 제자들을 가르치셨지만 거기에는 교재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얘들아. 오늘 1시부터 2시까지 사도신경 강해다... 그리고 2시부터는 구원론 강의다..." 이렇게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과 같이 먹고 주무시고 대화하면서 사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제자교육이었습니다.
주님 자신이 교재이고 그분의 삶, 그분의 임재와 생명 자체가 그들에게 교육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제자훈련입니다. 주님 자신을 먹고 마시고 경험하고 주님의 실상을 알아가는 것...
사람의 영혼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영적 권세가 있어야 합니다. 무기력하여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받고 무시를 당하는 사람이 사람을 인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36. 발성이 결여된 깨달음에는 영적인 실제가 없다 - 어떤 이는 기도보다 말씀이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기도에는 인간적인 소원이나 인간적인 열정이 들어갈 수도 있지만 말씀은 순수한 것이며 오직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말은 어리석은 말입니다. 말씀과 기도는 둘 다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어느 것이 우위냐 하는 질문은 어린아이들이 '슈퍼맨과 배트맨이 싸우면 누가 이겨?' 하는 질문과 같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기도를 먼저 하고 말씀을 보는 것이 순서라면 순서입니다. 기도로 심령을 열어 놓고 말씀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기도 없이 말씀으로만 사람을 적용시킬 수는 없습니다. 기도로 심령이 열리지 않으면 그 말씀은 심령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뇌로 가서 '지식'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움직이고 실천하게 하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심령'입니다.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이지 아는 대로 되는 게 아닙니다
37. 발성이 충만할 때 응답이 선명하다 -똑똑한 사람일수록 머리가 발달하고 영이 발달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을 정확히 듣기가 힘듭니다. 뇌의 특징은 보기에 따라서 이런 것 같기도 하고 저런 것 같기도 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렇지만 저렇게 생각하면 저런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또렷하고 선명한데, 머리가 좋은 사람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정말 하나님의 말씀인가? 하고 의심을 먼저 합니다.
단순하고 생각이 복잡하지 않은 사람일수록 하나님의 음성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듣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모두에게 똑같이 들려지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 이렇게 다른 것입니다.
38. 발성의 기초 위에서 다른 것들이 풍성함의 도구가 된다 - 씨름에 대한 동영상이나 비디오를 많이 보았어도 실제로 삿바를 잡아보지 않은 사람은 막상 씨름을 해보면 자신이 본 것처럼 잘 되지 않습니다. 수영도 직접 해보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강의를 듣고 이론적으로 잘 알더라도 실제로는 물 속에 가라앉고 맙니다. 보고 듣고 아는 것과 실제로 해 보아서 아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부르짖는 기도와 발성의 훈련은 모든 기도의 기초입니다. 발성의 훈련이 되어있지 않은 사람은 무슨 기도의 비법을 알려 줘도 한 두 번 하다가 포기하고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39.부흥이 있는 곳에 소리가 있다. - 강렬한 부흥의 역사, 성령의 권능이 임하는 집회를 사모하며 그러한 집회를 인도하기 원하는 사역자들은 그러한 소리를 훈련해야 합니다. 간절하게 부르짖고 외치는 것을 기도하며 훈련해야 합니다. 그저 편안하게 조용조용히 가르치고 전하기를 원하는 이들은 그러한 부흥의 주역이 되는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교회가 건축을 한 해에는 다른 해보다 몇 배나 성도들의 숫자가 증가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성도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 자체가 부흥은 아닙니다. 교회 시설이 좋으면 사람들은 좀 더 많이 올 것입니다. 주차하기가 편하고, 가정 세미나, 취미생활을 위한 세련된 좋은 강좌 프로그램이나 모임이 있다면 사람들이 좀 더 모이기는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교회의 부흥이 아닙니다. 그렇게 숫자가 늘어나는 것을 가지고 부흥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부흥에는 심령의 폭발이 있습니다. 생명이 가득하고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가 충만하게 나타나는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그 하나님의 영광에 사로잡히며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가지게 되는 것이 부흥입니다. 하늘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이 사람들의 영혼에 임하며 심령에서 생수가 쏟아지고 감사와 기쁨과 행복의 눈물이 그치지 않습니다.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는 눈물의 탄원이 그치지 않습니다.
밤이 새도록 찬송을 하고 또 찬송을 해도 그 심령의 달콤한 기쁨은 사라지지 않아 더욱 더욱 기도하고 찬송을 드리고 싶어집니다. 사람들의 심령에 주님을 사모하는 갈망이 끝없이 일어납니다. 주를 위하여 살고, 주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고 싶은 열망이 미칠 듯이 일어납니다. 더욱 더 기도하고 싶고 예배를 드리고 싶어서 난리가 납니다. 사람의 숫자와 상관없이 이것이 바로 진정한 부흥입니다.
그러한 교회가 있냐고요? ... 수 없이 많이 있었습니다.
40. 악한 영들은 소리를 빼앗아간다. - 소리는 능력의 비결이며 풍성함의 비결이며 권능의 비결인데 왜 교회는 소리를 잃어버렸을까요? 왜 하늘 문을 여는 그 중요한 열쇠를 잃어버렸을까요? 어떤 사람에게 귀중한 보물이 있었는데 어느 날 보물이 사라졌다면 그것은 도둑이 와서 훔쳐간 것입니다. 그 보물의 가치와 위력을 알고 있는 어떤 놈이 훔쳐간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새마을 노래'는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하고 시작합니다. 그 새벽종소리가 사라지는 순간 한국교회의 새벽기도가 점점 기도하지 않기 시작했고 성도들이 기도를 잃어버리기 시작했습니다.
새벽종소리를 누가 빼앗아갔습니까? 새벽 종소리가 울리지 않음으로 세상이 더 나아졌습니까? 결단코 아닙니다. 새벽종소리는 종소리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소리였습니다. 마귀에게 빼앗긴 새벽종소리를 찾아와야 합니다.
41. 기가 죽었다는 말은 '소리가 죽어 있다'는 것과 비슷한 것입니다. 기가 죽은 사람은 소리를 잘 내지 못합니다. 무엇을 물어보아도 주저하고 망설이며 모기소리 만한 소리로 잘 들리지 않게 대답합니다. 악한 영들은 건강하지 못한 가정의 분위기를 사용하여 사람들의 기를 죽이며 소리를 빼앗아 갑니다. 큰소리로 호통을 치는 것은 소리를 빼앗는 것이며 소리를 죽이는 것이며 결과적으로 그 영혼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란 사람은 평생을 자신감이 없이 소심하게 눌리고 고민하고 근심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한 사람도 소리의 생명적인 의미를 알고 소리를 토하고 소리 지르며 소리를 회복하게 되면 그의 영도, 마음도, 성격도, 환경도 다 변화되어 행복하고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42. 뜨겁게 소리를 지르며 기도하는 것이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아무나 원한다고 해서 소리를 지를 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조용한 교회에 가서 예배를 인도하며 "주여!" 3창을 시도해 보십시오. 따라 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자유롭고 풍성하게, 원하는 만큼 소리를 내고 소리 지를 수 있는 사람은 자유롭고 강하고 해방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르짖는 기도를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입니다. 영이 충만하지 않으면 아무나 그렇게 부르짖어 기도할 수가 없습니다. 피를 토하듯이 간절하게 강력하게 설교하는 것도 하고 싶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43 영이 맑고 예민하며 깨어있는 사람은 항상 쉽게 소리를 내어서 기도할 수 있으며 그 맑은 소리를 지킬 수 있습니다. 그는 깨어 있기 때문에 세상에 속한 소리, 조금만 좋지 않은 소리를 들어도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분노에 찬 소리나, 남을 험담하거나 원망하는 소리, TV소리들을 들으면 그는 속이 고통스러워서 견딜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러한 소리가 들어오면 가슴이 답답해지므로 다시 부르짖어 그렇게 들어온 악한 소리의 기운을 토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고 감각이 둔하고 마비되어 있으며 깨어있지 않은 이들은 언제 그의 안에 세상의 소리, 악한 소리가 들어왔는지조차 모릅니다.
44. 부르짖는 기도는 훈련과 경험을 통해서 발전해간다 -부르짖는 기도는 무조건 악으로 깡으로 하는 기도가 아니라 원리에 의해서 차분하게 한 걸음씩 걸어가며 훈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부르짖음의 결과로 영적인 탈진이 올 수도 있고 온 몸이 쑤시고 아플 수도 있습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힘이 빠질 수도 있습니다. 얼마 부르짖지 않았는데도 말입니다. 부르짖는 기도는 한 순간의 만병통치약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실 1.2년 안에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르짖는 기도의 초보는 그다지 아름답다고 할 수 없으며 그저 소란스럽고 거칠고 사납고 육성적인 모습이 많이 나타나는 미숙한 것입니다. 그러나 초보를 벗어나 오랜 세월을 거쳐 훈련된 부르짖는 기도는 거룩함과 영광으로 가득 찬 기도입니다.
45.발성이 된 사람들은 상상하는 기도를 해도 그 상상이 그에게 실제가 될 것입니다. 그들은 묵상으로 말씀을 먹어도 그 말씀이 그들 안에서 생생하고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발성은 이처럼 모든 은혜의 도구가 역사할 수 있는 기초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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