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는 본질적으로 교사이다... 우리가 가르치는 것은 성경에서 우리에게 맡겨진 것이다... 신실하지 못한 청지기가 되기는 매우 쉽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일을 게을리 하고, 그것을 현대 세계에 민감하게 연관시키지 못하고, 그것의 의미를 자신의 의도대로 조작하고, 그 말씀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취하고 좋아하지 않는 것은 내버리며, 심지어 그 말씀의 명백한 의미를 부정하고 대신 내용이 빈약한 추측을 끼워 넣고, 그들 자신의 삶에서 그 말씀에 완전히 불순종한다. (122-123)
강단에 올라설 때 그는 완전한 자유인이 아니다... 그는 마음대로 메시지를 만들어 내거나 선택할 수 없다. 메시지는 그에게 위임된 것이며, 그가 할 일은 그것을 청중에게 선포하고 해설하고 권하는 일이다. (123, Donald Coggan, The precher as trustee)
고전 4:8-13. 바울은 죄수들이 죽기까지 싸우는 원형 극장으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내가 생각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같이 미말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그 극장은 흥분한 관중으로 가득 차 있다... 범죄자들을 사자에게 던지든가 아니면 검투사들과 싸우게 함으로 대단원의 막이 내려진다. (124)
고난은 참된 그리스도인의 표지이다. 제자는 주인보다 위에 있지 않다... 루터는 고난을 참된 교회의 표지 중 하나로 여겼으며, 아우구스부르그 집회를 준비하면서 작성한 비망록 중 하나에서는 이와 비슷하게 교회를 “복음을 위해 핍박받고 순교당한 사람들”의 공동체로 규정한다... 제자도는 고난받는 그리스도께 충성을 바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고난 받으라고 부르심 받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128) Dietrich Bonhoeffer, The Cost of Discipleship (1937; SCM, 1959), p.74. 「나를 따르라」 (대한기독교서회).
우리의 리더십 유형은 그리스도보다는 문화에 의해 형성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문화에서 제시하는 리더십 유형 중 많은 것은 예수님이 가르치시고 보여 주신 종의 이미지와는 맞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러한 이질적인 문화적 유형들이 종종 교회와 그 조직 안에 무비판적으로 이식되어 있다. 아프리카에는 추장, 남미에서는 스페인 남성의 남자다움 (과장된 남성성), 남아시아에서는 제자들을 거느린 종교적 구루, 동아시아에서는 스승의 도전할 수 없는 권위라는 유교적 유산 그리고 영국에서는 영국의 지배 (British Raj) 정신, 즉 영국 통치와 관련된 교만한 자만심이 리더십의 유형이다. 그리스도인 지도자들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유형 중 하나에 동화되기가 쉽다. 하지만 우리 기독교 공동체 내에는 ... 이러한 문화적 리더십 유형들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고 결정해야 한다. 이러한 유형들은 사랑과 온유함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바울은 자신의 사도적 사역을 말하며, 그리스도의 종이고, 계시의 청지기이며, 세상의 찌끼이고 교회 가족의 아비라 말한다. 그리스도 앞에서의 겸손, 성경 앞에서의 겸손, 박대를 직면해야 하는 세상 앞에서의 겸손, 사랑하고 섬겨야 하는 교인들 앞에서의 겸손, 사도바울이 말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 (고후 10:1)”의 특징을 지니게 되기를 기도한다. (133-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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