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살아계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알리신다.
(초대교회는) 1) 예수님께 하나님이라는 호칭을 부여했다. 2) 예수님께 하나님에 대한 본문을 적용했다. 3) 예수님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받으실 것을 기대했다.
창조자, 통치자, 심판자, 구원자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알려지기를 원하신다.,, 야웨는 땅끝까지 모든 민족에게 알려지기를 열렬히 원하신다... 하나님은 바로 예수님을 통해 열방에게 알려지실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을 앎으로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하나님의 선교를 성취하신다. (153)
성경적 유일신론과 선교: 성경적 선교는 하나님으로 알려지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의해 이루어진다... 피조무르이 유익은 인간이 하나님을 아는 것에 달려 있다... 선교는 이미 지나치게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인류에게 또 하나의 종교적 짐을 부과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분을 아는 것에 우리의 영생이 달려 있는” 한 분 참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나누는 것이다. 그 지식은 우리를 자유하게 한다... (160)
알려지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을 알리기 위한 우리 선교의 주요 동기다... 하나님의 선교가 우리의 선교의 원천으로 선행된다... 하나님을 알리고자 하는 우리의 모든 선교 활동은 그보다 앞서는 틀, 곧 알려지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틀 안에 두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를 겸손하게 하면서, 동시에 안심시킨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서툰 노력과 부적절한 의사소통 배후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가장 귀한 뜻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162)
성경적 유일신론에는 부단한 기독론적 투쟁이 포함된다. ...우리는 끊임없이 신구약 모두에서 살아 계신 성경의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분명히 말하고 변호하는 변증적 과업을 수행하게 된다.. 나사렛 예수가 유일무이하게 하나님, 주님, 구세주라고 주장하면, 즉각 모든 면에서 동일한 양상의 선교적 충돌을 겪게 된다... 그리스도 중심적인 성경적 유일신론은 대단히 선교적이다. 야웨가 위로 하늘과 아래로 땅에 하나님이시며 다른 분은 없다고, 그리고 예수님은 주님이시며 하늘 아래 우리가 구원받을 다른 어떤 이름도 주어진 적이 없다고 똑같이 힘있게 말하는 한 그런 것이다. (163)
존 파이퍼는 그의 책 ‘열방을 향해 가라’ (Let the Nations Be Glad)의 탁월한 서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선교는 교회의 궁극적 목표가 아니다. 예배가 목표다. 선교는 예배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존재한다.” John Pipter, Let the Nations Be Glad! The Supremacy of God in Missions, 2nd ed. (Grand Rapids: Baker Academics, 1993), p17.
5. 살아 계신 하나님은 우상숭배와 대결하신다.
이스라엘의 유일신론의 본질은 근본적으로 이스라엘이 다른 신들에 대해 무엇을 부인하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야웨에 대해 무엇을 역동적으로 단언하는가 하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웨애 대한 단언은 다른 신들에 대한 모든 주장에 피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온다. 리처드 보캄은 특히 신명기에 대해 논평하면서, 그리고 신명기가 다른 신들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는다는 네이슨 맥도날드의 주장을 논박한다. (172)
신이라 간주되는 것들은 사실은 그것을 나타내는 우상들과 다를 바 없다. 즉 둘 다 인간이 만든 것이다. 그것들을 숭배할 때 우리는 우리가 만든 어떤 것에 충성을 바치고 권능과 권위를 부여하며, 스스로 복종하는 것이다. (190)
자끄 엘룰은 성경에서 말하는 우상숭배를 현대 서구 문화의 동향, 특히 세속주의와 최초로 연결시킨 사람 중 하나다... J.A.월터는 동일한 방법론을 광범위한 사회 현상들에 적용시켰다. 그 현상들 가운데 많은 것은 그 자체로는 좋은 것이지만, 쉽게 우상으로 숭배받을 만한 높은 지위를 차지할 수 있다... 밥 하웃즈바르트(Bob Goudzwaard)는 그 분석을 이데올로기의 전 영역으로 확대한다. 특히 혁명, 국가, 물질적 번영, 안전 보장이라는 이데올로기들에 초점을 맞춘다. 월터 윙크의 삼부작은 성경, 특히 신약에 나오는 권세에 대한 가장 해박한 연구 중 하나다. 하지만 윙크는 그 권세들이 인간의 구조에 침투하는 것의 객관적 귀신적 측면들에 대한 성경의 주장을 충분히 강조하지 않고 있다. 클린턴 아놀드(Clinton Arnold)는 그 점에서 좀 더 균형이 잡혀 있다. 비노스 라마찬드라는 새로운 우상숭배들이 지닌 폭력성, 과학을 우상화하는 사람들의 독단론, ‘합리와 불합리’에 대한 계속적인 우상숭배를 관찰하면서, 모더니티와 그 결말을 더 깊이 분석한다. (206-207)
우리는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들을 달래거나 피하기 위해 그것들을 신으로 만들어 경배한다... 두려움의 우상숭배적 능력은 그 두려움의 대상의 크기와는 별 관계가 없다. 현대 서구 사회 사람들은 이전 세대보다 훨씬 더 안전하고, 건강하고, 위험이 없는 상태에서 살지만, 염려와 두려움과 노이로제에 사로잡혀 있다. 우리는 화려한 매스컴의 속임수에 현혹되어, 최신 변종 바이러스에 떨면서, 아무리 애써도 실제로는 공포를 결코 막을 수 없는 안전장치에 지나치게 많은 돈을 쓴다. (209)
우상들은 하나님의 정당한 영광을 가로챈다... 우상들은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왜곡시킨다... 당신이 하나님 아닌 것을 경배하면, 당신은 당신 자신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축소시킨다. (216)
사도바울은 (1) 어떤 서신에서 치밀한 신학적 논쟁을 벌이면서 우상숭배를 다룰 때 (롬1:18-32), (2) 다른 신들을 숭배하는 사람들을 만나 전도하면서 우상숭배와 대결할 때 (루스드라 행 14:8-20, 아테네 행 17:16-34, 에베소 행 19:23-41), (3) 교회 안에서 주위의 우상숭배에 대해 제기된 질문들에 대해 목회적으로 씨름할 때(고전 8-10장) 서로 다른 접근법들을 취했다. (224)
아덴에서 바울은 예수님과 부활에 대해 몇몇 철학자들과 토론을 벌인 것 때문에 아레오바고 시 당국 앞에 불려가서 그의 가르침에 대한 검열을 받게 되었다. 이 청문회는 그저 호기심으로 인해 예의 바르게 물어보려 한 것이 아니라 공개조사였을 것이다. 아덴에 새로운 신들을 소개하는 것은 종교적으로 별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시 당국의 통제를 받아야 했다. (1) 신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이 실제로 그 이름에 걸맞은 어떤 업적을 지니고 있는지 (2) 그 후원자가 신전을 세우고 제사를 드리고 제사장에게 급료를 지불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바울의 연설은 이러한 시의 전례를 혼란에 빠뜨렸다. 바울이 대변하는 하나님은 아덴 당국에 의해 인간적인 인정을 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그들 위에서 그들을 심판하는 존재였다. 인간 수행원에게 거처와 먹을 것을 공급받기는커녕 하나님은 오히려 온 인류에게 거처와 먹을 것뿐 아니라 훨씬 더 많은 것들을 공급해 주셨다. (226) Bruce Winter, "On Introducing Gods to Athens: An Alternative Reading of Acts 17:18-20", Tyndale Bulletin 47 (1996): 71-90
에베소에서 2년간 체계적으로 공개 강좌를 하고, 그와 함께 놀라운 치유의 기적을 행하자, 참으로 회심한 신자들의 수가 늘어나게 되었다.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고 살아계신 하나님께 돌아오고 있었기 때문에 에베소의 우상 산업 시장이 와해되기 시작했다. 바울의 가르침에 대한 직접적 기록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누가는 데메드리오의 입을 빌려 그 가르침을 이렇게 요약한다. “(바울이)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행 19:26) ... 우상숭배하는 이교도들을 직접 상대할 때 바울의 전도 전략은 솔직하고 단호하지만, 더 부드럽고 정중하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바울이 에베소를 후원하는 여신들인 아데미/디아나를 구체적으로 비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신전의 물건을 도둑질하지도 아니하였고 우리 여신을 비방하지도 아니한 이 사람들” (행 19:37) ... 분명 바울은 단호하고 효과적인 전도 방법을 사용했지만, 모욕적인 태도로 복음을 전하지는 않았다. (226-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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