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투르니에, 『모험으로 사는 인생』 정동섭. 박영민 옮김
(1)
대학 2학년. 불확실한 진로로 고민하던 중 제목에 이끌려 이 책을 들었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실히” 알고 싶어 한, 사실은 나의 안전추구본능이었던, 그 두려움과 욕심은 이 책이 말하는 모험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나님의 뜻이란 내가 잡을 수 있는 무엇이라 여겼던 당시의 나는 결국 이 책을 덮었고 5년 가까이 서재에 꽂힌 그 제목을 무심히 지나쳤다. 선배들이 “모험으로 사는” 삶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도 나는 여전히 “분명한” 하나님의 뜻 가운데 순종하는 용기로 그것을 생각했었다. 나의 눈높이를 기꺼이 맞추어주셨던 하나님은 나의 불안과 조급함에 ‘네 인생을 책임지겠다’고 믿음을 독려하셨고 나는 미성숙과 불순종 가운데서 하나님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졸업 이후 우연히 책을 다시 들었다. 이번엔 달랐다. 나는 지금도 불확실한 미래로 고민하고 있으며 조급함이 내 마음으로 밀려올 때가 많지만 그러나 무엇인가 달랐다. 부모님에 대한 생각으로 낙심했던 내가 회복되었던 그것. 비슷했다. 부모님의 인생 가운데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계신다는 것을 깊이 확신했을 때. 나는 불확실한 우리 작은 인생 가운데 주관하고 계시는 크신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 <아담의 침묵>을 읽으며 나의 요리법 신학을 포기했다. 인생의 혼란을 수용하기로. 그리고 PBS 웍샵에서 나는 나의 복지부동이 이끌어 온 행동이 없는 감상적인 삶을 보고 흠칫 놀랐다. 그 즈음 <살아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단숨에 읽고 마음이 부풀었을 때 나는 다시 동일한 맥락의 이 책을 읽고 있었던 것이다.
(2)
모험. 폴 투르니에는 인생을 모험으로 이해한다. 사람들의 마음 속 깊이 자리하고 있는 인간 고유의 이 본능은 다른 것과 대체할 수가 없어서 사람은 모험을 하고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진짜 모험의 자리를 대신하는 무언가에 열중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그는 질적인 모험과 양적인 모험의 차이로 설명한다. 권력이나 학위, 재산 혹은 자신이 가치를 두기로 선택한 어떤 일에 미친 듯이 열중하는 양적인 모험은 자신의 삶의 질에 대한 커다란 불만족을 보상하려는 노력이라는 것이다. ‘뛰어들기’로 표현하는 이 모험의 시작과 끝이 가진 단계별 속성. 모험을 공유하는 이들의 유대, 인생의 성공과 실패 등의 몇 가지 통찰은 다시 읽을 만하다.
그리고 이제 묻는다. 우리에게 생동감 주는 이 강렬한 모험의 본능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는 이 물음의 대답을 성경에서 찾는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하나님의 본질적인 속성 가운데 모험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하나님은 창조의 모험을 하셨고 인간의 죄악에 대하여 구원과 사랑의 모험을 하셨다. 성경의 하나님은 행동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성육신하신 하나님. 낙심과 고난이라는 위험을 동반한 최고의 모험을 행하신 그분을 본다. 그리고 이제 그분은 성령과 더불어 선교의 모험을 하고 계시다.
이 책에서 폴 투르니에의 선교에 대한 포괄적이고도 현대적인 개념을 읽을 수 있었다. 모험이 삶의 본질이듯이 선교가 우리 삶에 본질적인 모험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는 초기 개척자들의 선교적인 조망을 회복하려고 애쓰고 있다. 선교는 바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복음 증거자를 먼 이방 땅에 내보내는 것만을 의미했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끼치는 훨씬 더 직접적이고 포괄적인 모험이 선교에 관련되어 있음을 우리는 깨닫는다...하나님의 종이 부르심에 응답하여 새로이 이 모험의 정신을 재발견했을 때마다 교회사에 이와 같은 갱신이 일어났다.”
그가 성경을 모험이라는 인식 속에서 이해한 대목은 성경이 모험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특히 중요하다. “성경은 모험의 책이며 그렇게 읽어야 한다... 성경은 또한 모험에 참된 의미를 부여해 준다. 왜냐하면 성경은 우리의 모든 수고와 활동, 선택과 자기 헌신의 의미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3)
그는 모험의 특징을 다섯가지로 요약해 놓았다.
1.모험은 자기 표현의 한 형태이다.
2.모험은 혁신을 일으키고 무엇인가를 발명케 한다. 모험은 독창적이다.
3.모험은 단 하나의 최종 목표를 추구하는 가운데 통일성을 지닌다.
4.이 목표는 사랑이다. 목표를 제안하는 것도 사랑이며 그 모험의 과정을 유지시켜 주는 것도 사랑이다.
5.마지막으로 모험은 위험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모험을 사랑이라는 관점에서 본 것과 모험의 통일성을 설명한 것이 독창적이다. 저자는 특히 위험부담과 관련하여 모험과 안전추구본능 사이에 존재하는 내면의 문제들을 비교적 자세히 분석하고 있다. 실패심리학. 이 장을 오래전에 여러 번 읽은 흔적이 있었다. 사르트르의 ‘실패는 자유롭게 선택한 것’이란 말을 인용하며 실패 이면에 있는 사람의 허위의식들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것에는 사람의 기질이 깊이 관련되어 있는데 저자가 쓴 <강자와 약자>에서 이러한 생각이 잘 나타나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부분은 뒤에 ‘역설들’이라는 장에서 보다 더 자세히 서술된다.
심리학적 도구들이 상당히 유용함을 이 장에서 느꼈다. 여우와 포도나무 이야기를 하면서 비관주의라는 은폐기제를 설명한다. 사람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엄청난 두려움을 어느 정도 가늠하게 해 준다. 강자와 약자를 물론하고 두려움을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이 발견하는 확신은. 하나님이 뜻하시고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분량만큼만 성공과 모험을 추구하게 한다.
(4)
하나님의 뜻을 물으며 주저하고 자신의 잘못됨부터 우선 인식하게 되는. 나의 기질과 같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격려는 “그가 결코 외로운 대열에 서 있지 않다는 것”이다. “모험적인 삶은 두려움이 없는 삶이 아니라 각종 두려움을 충분히 인지하는 가운데 영위되는 삶이다.” 라는 인식은 보다 삶을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그것은 다음의 말로 더 잘 요약될 수 있다. “시험으로부터 도피하는 것보다는 시험에 실패하는 것이 언제나 더 좋다.”
생각할수록 우리 주신 삶이 선물임을 알게 된다고. 내게 삶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곰곰이 생각해보며. 부모님의 인생과 나의 삶을 헤아려보며 나는 이것을 많이 생각했더랬다.
더 많은 준비라는 끝없는 안전조치를 벗어 던지고 모험에 뛰어드는 것. 내게 필요한 영성이며 내게 요구되는 삶의 양식이었다.
(5)
우리는 삶의 어느 영역에서나,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불확실함을 느낀다.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깊이 의지하게 하고 끊임없이 그 분의 인도하심을 구하게 만든다.
나의 불확실함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해야겠다. 중요한 것은 그 분의 말씀을 듣는 것, 우리 자신이 인도받도록 하는 것, 그 분이 우리를 부르신 대로 모든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그 모험에 과감하게 직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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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가감정(ambivalence). 이상과 현실은 통합이 불가능하다. 불가능한 통합을 할 수 없음에 질책해서는 안 된다. 만일 우리의 모순적인 요구와 열망들을 화해시키는 대신 그것들을 활기차고 상호 보완적인 방법으로 차례차례 선택하는 것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면 그것은 주저하고 망설이는 많은 사람을 압도하는 내성의 바다로부터 우리를 건져 낼 수 있는 모험의 흥분 속에서 일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을 살필수록 그만큼 행동을 적게 한다. 적게 행동할수록 그들이 해야 할 바를 알아내는 것이 어렵다. 하나님은 우리가 멈춰 서 있을 때가 아니라 뭔가 하고 있을 때 우리를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이상과 현실은 불가능한 통합이다. 양립할 수 없는 열망 사이의 긴장을 결코 피할 수 없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이해. 하나님께만 의탁하면 확실히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고 따라서 하나님의 뜻을 찾는 모든 과정에서 모든 불확실성과 모호함과 불안감을 피할 수 있는가? 우리가 자신을 포기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데 더욱 어려움을 겪게 된다. 하나님을 더 잘 알기 위해 성경을 공부해야 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그 분의 음성을 듣기 위해 귀를 기울여야 하고 하나님과 교통함을 가로막는 죄를 따져보는 노력을 더욱더 엄격하게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모험이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매일의 모험이며, 드문드문 있는 몇 번의 경건한 시간이 아닌, 매순간에 모든 생각과 감정과 행동에 영향을 끼치는 모험이다. 우리 삶의 개인적인 문제는 여전히 그대로 있다. 근본적으로 바뀌는 것은 바로 삶에 대한 근본적인 태도이다. 삶에 대한 태도는 언제나 하나님에 대한 태도를 반영한다. 긍정은 모험을 받아들이는 태도이다. 그 모험에 우리는 전 존재를 건다. 모험은 시든다. 어김없이 그렇다. 이 훌륭한 모험이 기력을 잃고 쇠퇴함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새로운 모험을 열어주신다. 불만족스러운 현실이 다시 한 번 거대한 모험이 된다. 모험과 안정. 이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 지난 모험을 겪는 중에 가진 비탄과 상처를 내어놓아야 하며 지난 모험이 준 안정마저도 내어 놓아야 할 때가 있다.
(7)
모험. 그러나 모든 인간의 모험에는 나름의 한계가 있다. 우리는 피조된 세계의 한계를 넘지 못한다. 인간의 모험에는 실망과 좌절과 실패가 있다. 성공조차 완벽하거나 최종적인 것이 아니다. 나이마다 그에 속하는 모험이 있다. 행동의 열기가 가라앉고. 활동의 이치에서 존재의 이치로 이행해가는 것, 그것도 커다란 모험이다. 이 모험들은. 인생이라는 커다란 모험에 대한 훈련이다. 인생에 여러 단계가 있지만 여기에 통일성을 부여해 주는 인생의 전체적인 의미는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다. 부활. 새 예루살렘. 그것은 새로운 모험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모험은 계속되고 새로워지며 새롭게 솟아나고 우리는 그 모험에 충만하게 참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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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생각의 단초를 주는 문장과 주제들이 있었다.
1. 우리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우리 사회와 그 사회의 편견과 연계되어 있다. 사회의 임의적인 판단으로부터 자유로워서 양심의 판단과 하나님의 판단에만 의존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그러나. 그 속에서 살면서 인정과 극복사이에서.
2. 독신과 결혼. 예상하지 못한 장. 진실은. 결혼을 하든 안 하든 삶이란 언제나 어렵다. 인생의 조망, 기혼이건 미혼이건간에 한 사람의 삶을 성공적으로 만드는 일
3. 실패의 교훈. 신앙이 인생을 쉽게 해주지는 않는다. 신앙이 가져다주는 해결책보다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 해답, 둘의 차이. 가장 경건한 포부 속에 겪게 되는 실패와 실망의 어려운 길이 성공보다도 우리를 더 멀리 이끈다. 무엇이 성공이며 무엇이 실패인가? 성경의 대답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당신은 그 분에게 순종하고 있는가” 이다.
4. 대화의 필요성. 아무도 혼자서는 자신을 이해할 수 없으며 다른 사람을 만날 때에만 그것이 가능하다.
5. 의미. 세상의 의미에 대한 모종의 믿음을 함축하지 않고는 어떤 일이 의미있다고 말할 수 없다. 중요한 변증.
6.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 스스로를 포기함으로써 인격적인 태도를 지니게 되었다는 것. 가치있는 것은 이제 하나의 개념이라기보다 하나의 인격으로 나타난다.
7. 가치. 무엇이 가치 있는 것인가를 심각하게 생각할 때마다 이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을 찾고 있는 것이다. 가치의 논쟁, 하나님은 거기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계신다. 선택한 가치에 따라 행동한다는 면에서 인간은 종교적인 존재이다. 인간은 임의대로 선택할 수 없다. 어떤 보편적인 가치에 의거하지 않고 이루어지는 창조는 없다. “가치 있는” 대상에 대한 선택은 예외없이 여러 “가능한” 대상을 과감하게 거부해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8. 세상의 언어. 세상의 언어와 단절된 진지함과 심각한 철학은 동료의 대화를 무익한 것으로 여기는 듯한 느낌을 주며 깊이 들어가보면 자기 일에도 관심이 없는 듯한 느낌을 준다. 소통해야 한다. 스포츠, 영화, 음식, 정치 이야기해야 한다.
9. 모험을 가로막는 이원론적 사고. 현실의 삶의 문제를 직면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추상의 세계에 빠져 버린다. 소명을 잘못 생각하여 수도원에 들어간다. 독실한 아내로 인한 부부간의 소통의 단절. “사랑” 이라는 것이 정말 복잡하고 추상적인 것인가? 블룸하르트, 두 번째 회심이자 현실로의 복귀이며 형언할 수 없는 추상의 영역에서 세속적이고도 평범한 생활이라는 실제적인 모험으로 하강하는 것. 나는 모든일에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하나님을 섬긴다. 묵상. 성경. 하나님이 어떻게 인간의 현세적인 삶과 노동과 경제적인 어려움의 고통에 관계하고 계신가. 믿음. 우리로 세상을 외면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을 직면하게 한다.
10. <강자와 약자> 우월감이 있는 사람과 열등감에 시달리는 사람에 대한 통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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