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스 윌라드, 『하나님의 임재: 여기서 누리는 하나님의 나라』, IVP, 2016
Jane Willard, John Ortberg and Dallas Willard Center, Living in Christ's Presence,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14
1. 제자도
이제야 비로소 많은 교회와 그리스도인 지도자들이 제자도와 그리스도를 닮는 변화가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11)
내 생각에는 “가면서 제자를 삼으라”가 제일 좋은 번역이다... 제자 삼는 일은 사람들을 앞에서 끌어당기는 일이다. 우리의 됨됨이와 말을 통해 사람들을 이끄는 일이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 중 무수히 많은 이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라는 권유를 한 번도 받지 못했다... 당신이 제자도를 경험했고, 삼위일체의 임재 안에 제자들을 모으고 있다면, 이제 그들에게 예수님의 모든 말씀을 가르칠 입장에 있다. (20-22)
목회자를 비롯한 다른 모든 그리스도의 대변자가 하는 일은 무엇인가?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삶을 가져오는 일이다. 자기 안에 있는 그 삶을 가져오는 일이다... 예수님이 전하신대로 가르치면서 복음을 삶으로 보여줄 때, 즉 복음을 지금 누리는 하나님 나라의 삶이라고 제시할 때 사람들은 반응한다. (23, 25)
제자도는 교회를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교회가 제자도를 위해 존재한다. 제자도는 세상을 위한 것이다... 제자도를 교회의 일로 축소시키면, 우리 자신과 주변 세상을 변화시키는 제자도의 위력을 결코 볼 수 없다. (27)
제자도에 들어서면 거기에는 그리스도인을 연합하게 할 유일한 기초가 있다. 그 길을 통해서만 우리는 모든 전통과 교리와 관습과 소유하는 재산과 관할권 등의 문제들을 초월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목자들로서 우리는 지역사회에서 연합할 수 있고, 제자들을 통해 일상의 세세한 영역 속에 하나님 나라를 가져올 수 있다. (27)
2. 복음 전도
전도를 지식을 전하는 일이 아니라, 사람들을 설득하여 무엇인가를 하게 하려는 시도로 여긴다. 믿음과 지식을 분리시키면 사람들을 어떤 행동으로 몰아가게 된다. 기초를 제공해 주어야 사람들이 이를 바탕으로 개인과 단체로서 어떻게 살아갈지를 결정할 수 있는데 말이다. 전도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일련의 과정으로 변했고, 그러다보니 전도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의 대변자가 전하는 지식의 존엄성에 근거하여, 대변자의 존엄성을 회복시키고자 한다. 그리스도의 사람들을 배출하고 싶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으로서 우리가 소유한 지식의 존엄성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14-15)
수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복음의 핵심질문은 이것이다... “천국에 들어갈 최소한의 요건을 갖추었는가?” 복음은 사후의 천국 입성에 필요한 최소한의 요건을 알리는 소식으로 변한다.... 복음은 결코 그런 식으로 제시된 적이 없다... 그러면 하나님을 전혀 원하지 않으면서도 천국에는 가고 싶을 수 있다... 예수님의 복음은 “죽을 때 너희가 천국에 들어갈지 어떻게 아는가? 혹시 모를까봐 내가 최소한의 요건을 알려주겠다”가 아니다. 그 분의 복음은 “이제 하나님 나라가 너희 앞에 있다.”이다... 물론 예수님의 복음에는 오직 은혜로만 죄 사함을 받는다는 값없는 약속이 포함되어 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약속도 포함되어 있다. 그 모든 것이 들어 있다. 그 분의 복음은 집단적 차원도 있으나, 각 개인에게도 아주 깊숙이 다가온다. 죄 사함 그 이상이며, 단순히 사후에 벌어질 일 이상이다. (70)
의지를 변화시키는 것은 정보가 아니라 경험이다. (73)
3. 지금 누리는 하나님 나라
하나님 나라는 지금 누리는 것이다... (교인들의 성장을 도울 방법을 묻는 질문에 달라스의 답변은 이러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일상생활 속에서 깊은 만족과 기쁨과 확신을 경험하도록 당신의 삶을 조정해야 합니다... 당신이 교회에 내놓는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이라는 사람입니다... (140-141)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큰 일을 할 때 시작은 늘 비전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비전은 내가 하려는 일, 우리가 하려는 일이 아니다. 하나님과 그 분의 선하심을 보는 비전이며 하나님의 우주 안에 사는 내가 얼마나 복된지를 보는 비전이다... 비전은 놀라운 결과를 낳는다... 더 이상 하나님 나라의 삶이라는 비전에 집중하지 않고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그러고는 계속 안간힘을 쓰거나, 자책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래서 우리는 방법과 기술과 목표와 평가와 결과에 목을 매고, 탈진과 스트레스와 고갈은 불가피해진다. 그러고 나면 죄가 좋아 보이기 시작한다. 이것을 퇴치하는 유일한 해법은 삼위일체 안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 뿐이다. (141-143)
내일은 기도하지 마십시오... 그 사람 안에 스스로 의롭게 여기며 판단하는 마음이 있음을 간파했다. (196)
나는 내 목회를 보는 교인들의 눈이 내 운명을 결정짓는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고독 속에 들어가면 그것이 몸에서 떠나가는게 느껴진다. 아버지께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그러면 ‘일이 잘 되고 있는건가? 남들은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생각은 깨끗이 사라진다. 평소에 내가 그렇게 덧없고 미련한 생각에 지배당하고 있다니 정말 어이가 없어진다. 고독 속에서 나는 자유로워진다. 훈련은 늘 자유를 낳기 마련이다... 훈련이 내 안에 자유를 낳지 못한다면 나한테 맞는 훈련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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