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웰스, 『거룩하신 하나님』, 윤석인 옮김, 서울:부흥과 개혁사, 2007
David Wells, God in the Wasteland, Grand Rapids, MI: Wm.B.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94
복음주의자들이 가진 모든 권력은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고 문화에서 빌려 온 것이다. 빌려 온 권력은 빌려 올 때만큼이나 쉽게 박탈당할 수 있다. (55)
오늘날 복음주의는 부인할 수 없을만큼 현대적인 경향에 따라 좌우되고 있다. 악을 질병처럼 다루는 치유 중심의 문화가 가장 각광받는 곳이 바로 복음주의 진영이다. (56)
현대성은 우리 시대의 세상성이다. 인간을 중심으로 삼고 하나님에 대한 모든 생각을 부차적인 것으로 분류하는 모든 기존 문화에서 세상성은 타락한 가치와 신념의 체계요, 행동과 기대의 체계다. 세상성은 어떤 시대에서나 죄를 정상으로 보이게 하고 의를 이상한 것으로 보이게 한다. (59)
교회가 일반문화만큼 쉽게 자본주의 기술을 수용하게 만든 변화가 조지 바나의 시도를 가능케 (했다.) (104)
바나는 현대 문화의 동향을 고찰한 ‘중요한 조짐들’ (vital signs, 1984)의 출간을 통해 교회 성장 운동의 지지자로 부각되었는데, 그는 이 책을 수정해 ‘ 솥 안의 개구리’라는 제목으로 다시 출간했다…. 교회 개혁을 위한 바나의 전략은 대기업의 경영 테크닉을 치유 단체의 사상과 결합하는 방식과 관계 있다… 교회는 마케팅이 주도하는 환경으로 변모된 상황에서 마케팅 기법을 받아들이는 데 실패했다… 결국 오늘날 목회자는 유능한 관리자가 되거나 역량 있는 최고 경영자가 되어야 한다… 바나의 이론에서 교회 개혁의 핵심은 그가 ‘필요’를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달려 있다. 바나는 기업이 통상 그렇듯이,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필요의 관점에 따라 교회가 예배를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기업은 필요만큼이나 욕구도 충족시키지만, 바나는 필요와 욕구를 구별하지 않는 것 같다. 실제로 바나는 영적으로 유익한 필요와 해로운 필요를 반드시 구분해야 한다는 점을 명쾌하게 지적하지 않는다. (116-119)
마케팅의 복음주의가 니버가 설명한 구 자유주의의 복음, 곧 진노하시지 않는 하나님이 십자가 없는 그리스도를 통해 죄에 대한 심판 없이 사람들을 천국으로 인도하신다고 말하는 복음과 어떤 식으로 비슷해졌는가를 이해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131)
나는 하나님의 객관적인 실재를 믿는 믿음이 붕괴되는 현상과 종교적인 것에 대한 관심이 폭증하는 현상 사이에 논리적으로 아무 모순이 없음을 강조하고 싶다. 종교에 대한 관심은 종교적인 존재인 우리 자신에 대한 매력에 불과하며 참된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 신분과는 완전히 별개다. 신을 향한 우리의 열망을 묵상하는 일은 하나님의 본질 그대로 하나님을 깊이 생각하는 일과 전혀 별개다. (146)
우리가 오늘날 만연한 현대 인간론을 바꿔야 하고, 자신이 내면 경험과 종교적인 상품의 소비자라는 이해에서 벗어나 도덕적인 인식 자아와 행위자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인간 중심의 종교에 질식되고 있는 형편이라면, 우리는 하나님 중심의 종교를 회복할 필요가 있다. 만일 우리가 사는 시대가 하나님의 내재성을 매우 즐기면서도 그 내재성을 심하게 왜곡하는 시대라면 우리는 하나님의 초월성에 대한 인식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 (176-179)
거룩함은 그 본질상 우리가 소비자로 들어갈 수 없고 깊은 탄식 가운데 오직 죄인으로만 들어갈 수 있는 영역에 속한다. 사실상 우리는 거룩함에 전혀 근접할 수 없다. 우리는 거룩함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다가와 우리를 그 자신과 화해시키기를 기다려야 한다. (221)
바로 이 거룩함이 죄를 지적하고 은혜에 위대함을 부여하는 까닭에 하나님의 거룩함 없이는 죄도 아무 의미가 없고 은혜도 중요성을 갖지 못한다. 하나님의 거룩함 없이는 죄가 단지 인간의 실패에 불과할 뿐, 하나님 앞과 그분과의 관계에서의 실패가 아니다. 포사이스는 “사랑은 거룩함의 나아감이요, 죄는 거룩함에 대한 반항이요, 은혜는 죄에 대한 거루ㄱ함의 행동이요, 십자가는 거룩함의 승리요, 믿음은 거룩함에 대한 경배일 뿐” 이라고 말한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함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고 그 거룩함이 복음주의 신앙의 기장 깊은 내면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우리의 믿음이 그 예리함을, 우리의 실천이 도덕적인 강렬함을, 우리의 예배가 기쁨에 찬 열정을, 우리의 설교가 은혜의 신랄함을 갖지 못할 것이며 교회는 경쟁 단체들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발언권을 얻는 일에만 지나치게 몰두하는 공동체에 불과할 것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함을 인식하지 않는다면, 현대성의 권위를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가장 크게 일어온 것이 가장 시급히 회복되어야 한다. (22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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