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투르니에, 『강자와 약자』, 정동섭 옮김, 서울: IVP, 2000
Paul Tournier, The Strong and the Weak, The Westminster Press, 1963 - Les Fortes et les Faibles, 1948
나는 약자의 절망과 강자의 불안 그리고 이 두 부류의 불행 이면에는 거대한 착각이 있다고 믿는다. 거대한 착각이란 바로 인류에게는 강자와 약자, 두 부류가 따로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인간은 모두 약한 존재다. 인간은 누구나 두려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두 약한 존재다... 그리고 누구나 자기의 약점을 가리기 위해 특정 행동을 취하기 때문에 잘못된 양심을 가지게 된다. 인간은 모두 다른 사람들과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자신을 두려워하며 삶과 죽음을 두려워한다. 아무리 재능이 많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아무리 자기 확신이 강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명성이 왠지 현실과 부합되지 않는다는 모호한 감정과, 그 사실이 알려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있다. 아무리 학식이 많은 교수라 하더라도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질문을 받을까봐 두려워한다. 아무리 명석한 심리학자라 하더라도 자신이 진부한 열등 의식의 노예로 드러날까봐 두려워한다. 그리고 아무리 능변의 신학자라 하더라도 여전히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의심을 남들이 눈치챌까봐 두려워한다. 대중적인 찬사를 누리고 있다 해도, 사람은 누구나 자기와 가까운 이들은 사적인 영역에서 자신의 실패를 발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사람을 구분해 주는 것은 그들 내면의 본성이 아니라 누구나 느끼는 절망에 대해 그들이 반응하는 방식인 것이다. (22-23)
강한 반응이란 자신의 약점을 가리기 위해 자신 있고 적극적인 모습을 띠며, 자신의 두러움을 덮기 위해 다른 사람의 두려움을 자극하고 자신의 나쁜 면을 감추기 위해 좋은 면을 과시하는 것을 말한다. 반면 약한 반응은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자신이 감추고 싶어하는 그 약점을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강자는 다른 사람들에게 늘 자기 약점을 숨기기 때문에 결국은 스스로도 그 약점을 깨닫지 못하게 된다... 반대로 약자는 자신의 약점을 지나치게 의식한다... 강한 반응과 약한 반응은 외양적으로는 차이가 있어 보이지만,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24-25)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과 힘이 지배하는 비극을 벗어나는 진정한 자유의 길을 제시한다. 저자는 강자의 불안과 약자의 절망, 이 모든 비극을 넘어서는 길은 영적인 힘으로 사는 삶이라고 말한다. 영적인 힘은 인간의 문제에 새로운 차원을 제시하며 인간의 본성을 변화시킨다. 인간의 모든 강하고 약한 자연적 반응의 악순환을 끊는 힘이며, 모든 두려움과 세상의 가장 강력한 존재도 무너뜨릴 수 있는 힘이다.
인간은 동일한 내면의 고통에 대해 서로 상반되는 반응을 보인다. 즉 강한 반응과 약한 반응이다. 강한 반응이란 자신의 약점을 가리기 위해 자신 있고 적극적인 모습을 띠며, 자신의 두려움을 덮기 위해 다른 사람의 두려움을 자극하고, 자신의 나쁜 면을 감추기 위해 좋은 면을 과시하는 것을 말한다. 반면, 약한 반응은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자신이 감추고 싶어 하는 바로 그 약점을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자신이 약점이라고 의식하고 있는 것을 숨기지 못하고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그러나 이 모든 반응은 표면적인 것이다. 모든 사람의 근본적인 문제는 강하거나 약한 태도 속에 숨어 있는 도덕적 고통이다. ― 1장 외양과 실제, p. 26-27, 39
좌절감. 고통에 시달려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서 얼마나 자주 들었던 말인가! “제 인생은 이제 완전히 망했습니다. 10년 전만 해도 선생님께서 저를 도와주실 수 있었겠지만, 이제 너무 늦었습니다.” 나는 이런 말을 참 많이 들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을 망친 불행한 일들과 계속해서 닥쳐오는 인생의 고통에 낙심하여, 이 모든 괴로움은 도무지 피할 수 없고 자신은 저주받은 삶을 살고 있다고 느낀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이들은 누군가가 친절을 베풀고 사랑으로 돕고자 할 때조차 좌절한다는 것이다. 이들을 동정하는 마음이 이들에게는 오히려 모욕감을 주기 때문이다. ― 2장 좌절, p. 49-50
모든 두려움은 모든 사람을 ‘두려움을 두려워하는’ 상태까지 몰고 간다. 이 두려움은 정신을 혼란스럽게 하여 두려움에 대한 저항 능력과 상식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을 잃을 때까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어떤 환자는 내게 이런 말을 하곤 한다. “저는 죽는 것도 두렵고 사는 것도 두려워요.” 두려움은 두려워하던 바로 그 결과를 낳는다. 우리가 싸워야 할 것은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고 느끼는 감정이다.…두려움 중에서 죄가 되는 것은 날마다 버려야 하지만, 두려움이 주는 자극은 잘 간직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불쌍한 존재인지를 알게 하시려고 우리의 마음속에 두려움을 심으셨다. ― 3장 두려움, p.100, 139
약자에게는 사랑이 필요하다. 이들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그리스도의 사랑과 그 증거들을 발견해야 한다. 그 순간 그동안 절망하고 있던 이들이 자신을 극복하는 승리를 얻고 절망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된다. 부모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모두 털어놓을 용기를 갖게 되거나 자신이 미워한 사람에게 용서를 구하거나 배우자에게 몰래 졌던 빚에 대해 고백하는 등, 구체적인 첫 번째 승리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결과물들을 가져온다. 이것은 전략적 상황이 바뀌어 교착 상태에 빠졌던 전쟁에서 다음 단계로 가는 문을 여는 것과 같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들에 대한 우리의 신앙과 사랑이 진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과장하거나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은 말을 하거나 인위적인 친절을 보이는 것만큼 성공의 기회를 놓쳐 버리는 것도 없다. ― 4장 약한 반응, p. 188-189
나는 어떤 경우에도 심리적 반응은 제쳐 두고 유토피아적 삶의 이상만을 추구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런 종류의 성찰이 주는 유익은 ‘무엇을 깨달았는가’보다 ‘무엇인가를 깨달았다는 그 사실’이다. 거듭 인식하는 바지만, 우리는 상상 이상으로 파산한 상태며 이윤에 해당한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채무에 해당하는 것들이고, 심지어 강한 반응 속에 약함을 감추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가장 풍성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때 우리는 자신을 내면의 불안에서 구원하기 위해 감행했던 모든 무익한 시도를 단념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인간의 고통에 대한 단 하나의 진실한 해답인 하나님께로 돌아서게 된다. ― 5장 강한 반응, p. 220
세상이 생각하는 것처럼 한편에는 약자가, 다른 한편에는 강자가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한편에는 자신의 약점을 인식하고 심리적 보상은 모두 무익하다는 사실을 알며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만 의지하는 약자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자신의 강한 믿음과 이론, 성공과 미덕을 믿는 약자가 있을 뿐이다. ― 6장 상호 반응, p. 259
우리가 심리적 반응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물론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반응 자체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반응의 힘은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심리적 반응은 우리 마음속에 축적되어 있는 과거의 실패, 후회, 쓰라린 고통, 우리가 알고 있는 내면의 약함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진정한 자유는 우리가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할 때만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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