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전쟁이야기
유럽의 식민주의자들은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이야기를 정당한 지침서처럼 여겼다. (124) 여호수아 11:19-20. 참으로 경악스러운 진술이다. 이 문장을 성경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읽었다면, 우리는 대량 학살에 대한 변명일 뿐이라고 서슴없이 비난을 퍼부었을 것이다. (126) 존 파이퍼, “생명을 주시는 분도 취하시는 분도 모두 하나님입니다.” (129) 나는 근본주의라는 함정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자신의 본래 모습마저 잃어버린 사람들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130)
토머스 페인, “잔인한 신을 믿는 사람은 잔인한 사람이 된다.” (131) 신앙이 흔들리고 의심이 쌓일 때, 교회 생활만큼 마지못해서 해야 하는 일도 흔치 않다... 아무 이상도 없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야 할 때가 있다. (134) 나에게 성경의 전쟁 이야기를 아무런 반감없이 받아들이라는 것은 곧 인간이기를 포기하라는 말이나 다름 없었다. (135) 성경은 의기양양한 승자부터 애통해하는 희생자들까지 전쟁의 다양한 인간상을 조명한다. 폭력을 종교적으로 정당화하려는 이들에게는 무기가 보이겠으나... 성경의 전쟁 이야기는 어두운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라고 소리친다. (150)
성경해석 속에 권위자들의 폭력이 합리화되고 정당화되는 것에 대한 지적은 의미 있다. 폭력의 피해자들의 시선에서 성경 해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은 악한 분이신가‘라는 질문. 폭력에 대한 예민함으로 인해 질문하는 저자와 같은 이들에게 교회 공동체는 어떻게 답을 찾아야 하는가 고민하게 된다. 우리가 얼마나 어떻게 유연해질 수 있는가. 성경의 기록이 과장되고 전쟁이 미화되었다는 저자의 해결에는 불완전함이 있고,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인식하는 우리의 이해 속에 인본주의적인 해석을 벗어나고 있지 못하며, 하나님을 우리 인식의 틀 속에 가두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되는 것 같다. 여호수아가 아니어도, 이미 출애굽기에서부터 거룩하신 하나님의 진노와 그 거룩하심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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