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ST 시리즈, 『사도행전 강해』
누가는 오순절날 성령이 임하신 것과 성령 충만한 교회 공동체의 행복했던 시기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사도행전을 시작한다. 그런데 그 시기는 유대 당국의 방해로 인해 갑자기 끝나 버린다. 그는 계속해서 스데반의 순교와 빌립의 전도, 사울과 고넬료의 회심으로 이방 선교의 기초가 놓인 과도기적 단계 그리고 안디옥에 첫 번째 헬라 교회가 설립된 것에 대해 기술한다. 이 국제적 도시와 교회로부터 범세계적인 기독교선교가 시작되었다. 바울과 바나바는 구브로와 갈라디아를 복음화했다. 예루살렘 회의는 이방인 회심의 정당성을 인정했다. 두 번째 선교 여행 기간에 유럽에 (아덴과 고린도를 포함하여) 복음이 들어갔으며, 세 번째 선교 여행 때에는 에베소에 복음이 들어갔다. 그러고나서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붙잡혔으며 그 후 여러차례 재판을 받고, 가이사에게 상소하며, 그가 꿈에 그리던 도시 로마로 긴 항해를 한다. 거기에서 누가는 그와 헤어지는데, 그는 자신의 셋집에서만 거하도록 거주 제한을 받았으나,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는 제한을 받지 않았다. (9-10)
누가는 그리스도인 역사가로서, 외교가로서, 또 신학자이며 복음전도자로서 누가-사도행전을 썼다. (16)
바울과의 동행: 자신이 역사를 쓰고 있다는 누가의 말을 신용할 수 있는 다른 이유는, 그가 바울의 여행에 동참했다는 것이다. 사도행전 기사에서 여러 번에 걸쳐 누가는 삼인칭 복수에서 일인칭 복수로 바꾸고 있다. 첫 번째는 드로아에서 빌립보까지 이르는 것이었고 (16:10-17), 두 번째 여행은 지난 번 선교 여행을 종결지은 후에 빌립보에서 예루살렘까지 가는 것이었다 (20:5-15; 21:1-18). 세 번째는 예루살렘으로부터 로마까지 배를 타고 항해하는 것이었다 (27:1-28:16). 이 기간에 누가는 바울의 가르침을 듣고 이해하며, 자신의 경험에 대해 후에 그가 쓰게 된 글의 기초가 되는 개인적 여행담을 쓸 만한 충분한 기회를 갖게 되었을 것이다... (18)
팔레스타인 거주: 그는 바울과 함게 예루살렘에 도착했으며 (21:17), 바울과 함께 로마로 가는 항해 길에 오르기까지 (27:1), 2년의 시간동안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며, 복음서와 사도행전 초반부 예루살렘을 배경으로 한 부분에 대한 자료를 수집했다고 추측하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수태고지 기사는 마리아의 관점에서 쓰여 있으며, 마가 요한과 그의 어머니, 빌립, 사도 베드로와 요한 그리고 주님의 동생 야고보와 같은 다른 사람들도 예루살렘 교회 초창기에 관여했을 것이다. 그들은 승천, 오순절 초기의 복음 전파, 산헤드린의 반대, 스데반의 순교, 고넬료의 회심, 사도 야고보의 처형, 베드로의 투옥과 풀려남에 대해 직접 입수한 정보를 누구에게 제공해 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의 전반부가 매우 두드러진 유대적 색채를 띠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은 아니다. (18-19)
누가의 기독교 옹호를 위한 정치적 변론: 누가는 정치적 변론을 전개한다. 그는 기독교에 대한 로마 당국의 태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온갖 비판들에 대하여 기독교를 의도적으로 변호한다. 아마도 바로 이 때문에 누가는 자신이 쓴 두 권의 책을 데오빌로에게 바치고 있을 것이다. (21) 누가는 세 가지 정치적 변증을 하고 있다. (1) 로마의 관원들은 기독교에 대해 시종일관 호의적이었으며, 일부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되기까지 했다. (십자가 처형장 백부장, 고넬료, 서기오 바울) (2) 로마 당국은 예수님이나 그의 제자들에게서 아무런 잘못도 발견할 수 없었다. 빌립보에서는 치안관들이 바울에게 사과했고, 고린도에서는 총독 갈리오가 재판을 거부했으며, 에베소에서는 시의 서기장이 바울과 그의 친구들을 무죄라고 선포했다. 벨릭스, 베스도, 아그립바는 바울의 유죄를 입증하는데 실패했다. (3) 기독교는 합법적인 또는 인가받은 종교이다. 기독교는 국가의 승인을 필요로 하는 새로운 종교가 아니었다. BC 2세기 이래 로마제국 아래 종교적 자유를 누리고 있었던 유대교의 가장 순전한 형태였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은 구약 예언의 성취였으며, 기독교 공동체는 구약의 하나님의 백성과 직접적인 연속성을 지니고 있었다. 기독교는 아무런 해를 입히지 않고, 무죄하며, 적법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누가는 증거를 제시한다. (22)
편집비평의 가치는,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저자를, 자신들의 특정한 목회적 목적을 위해 자료를 선택하고 배열하고 제시한 신학자들로서 묘사한다는 것이다. (25)
누가의 구원 신학: (1) 구원은 하나님에 의해 예비 되었다 (눅 2:30-31; 스데반, 베드로, 바울의 설교), (2) 구원은 그리스도에 의해 주어진다 (눅 2:11; 19:10; 15:1-32; 행 2:38-39; 13:38-39; 행 4:12; 5:31). (3) 구원은 모든 사람들에게 제공된다 (눅 2:31-32; 3:6; 행 2:17). (2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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