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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성경강해

레이첼 헬드 에반스, 『다시, 성경으로』, 성경은 쉽게 답을 내 놓지 않는다

by growingseed 2021. 9. 6.

레이첼 헬드 에반스, 『다시, 성경으로』,
4장 논쟁 | 지혜 이야기
1. 고통 가운데 우리는 지혜를 배운다 : 지혜는 겸손하고 신실하게 한 걸음씩 내딛는 삶의 방식이다. (175) 욥기는 지혜에 대해 뭐라고 말할까? 실제로 고통을 겪어 본 사람의 지혜는 그렇지 않고 사색만 한 사람의 지혜보다 가치가 있다. (175) 엘런 데이비스, 『하나님의 진심』, “욥기를 통해 우리는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독특한 신학적 권위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에게 불평하고 애원하고 격분하는 자는 한순간도 하나님을 놓아주지 않는다. 그리고 마침내 신비의 세계로 들어간다. 오직 고통받는 자에게만 열리는 문을 지나 하나님과 대화할 자격을 얻는다. 세상에서 ‘잘나가는 사람’은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아주 특별한 대화로 초대받는 것이다.” (175)
2. 고통과 축복에 대해 손쉽게 결론 내릴 수 없다: 고통을 죄의 결과로만 보는 것의 위험성. 티모시 빌, “욥기는 성경을 가로지르는 단층선과 같다. 신명기 같은 율법책에서 인정하는 바 의인은 복을 받고 불순종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도덕적 세계관의 기반을 흔들어 금이 가게 하는 곳이 바로 욥기다.” 시 37:10 ; 시 82:2 ; 시 73:5, 13 ; 전 7:14. 성경은 고통과 축복에 관해 단일한 결론을 도출하지 않는다. 성경적인 신정론은 하나가 아닌 다수가 존재하는 셈인데, 성경을 저술하고 편찬한 이들은 이러한 긴장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듯 하다. (176-177)
3. 성경해석과 적용도 맥락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우리는 성경말씀에 따르면으로 시작하는 거창한 말들을 경계해야 한다. 성경 말씀을 갖다 대기 전에 어디에서?” “누구에게?” “어떤 맥락에서?” “?”를 물어야 한다... 지혜의 쓸모는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무엇을 말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언제 말하느냐가 중요하며, 무엇이 사실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언제 그것이 사실이 되는지 아는 게 중요하다.“ (177) 성경의 지혜를 이해하는 첫걸음은 다변적인 지혜의 속성을 부인하지 말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178)
4. 쉬운 답에 안주하지 말고 정직하게 물으라: 테오도르 아도르노, 진리를 알기 원한다면 고통에 입을 달아 주어야 한다.”역설적인 욥기, 불편할 정도로 솔직한 시편, 고뇌에 찬 전도서는 우리에게 하나님께 울부짖고, 따져 묻고, 요구하고, 그 분과 논쟁하면서 쉬운 답에 안주하지 말고 인생의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가라고 도전한다. (178)
5. 성경은 쉽게 답을 내 놓지 않는다: 다른 신앙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의 접촉면을 늘려 갈수록 이전에 ‘성경적’이라고 간주했던 입장들이 이제는 더 이상 감정적으로나 지성적으로 옹호할 수 없는 주장으로 변해갔다. (180) 성경을 진리라고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조차 성경의 가르침에 관한 다양한 해석과 적용이 존재하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성경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인생의 청사진이며, 신자들이 언제나 신봉할 수 있는 완벽한 가르침이라는 주장에 선뜻 고개를 끄덕이기는 어렵다. (181) 성경은 좀처럼 쉽게 답을 내놓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나 명쾌한 답을 원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경은 그와는 거리가 멀다. 복잡하고 상충하는, 폭넓고 깊은 인생의 경험들이 반영된 성경은 다양한 목소리와 견해들이 이루는 불협화음 때문에 잠시도 조용할 날이 없다. (184)
잠 4:7; 1:18 ; 잠 17:22; 전 7:3 ; 잠 26:4,5. 티모시 빌, “성경은 모순을 정경화했다.” (185) 티모시 빌, “성경이 명쾌한 답을 제시하는 책이라는 그럴듯한 주장은 독자를 영적으로 미성숙한 상태에 머물게 한다... 그런 주장은 성경의 역사적, 문학적 깊이 때문에 답을 쉽게 찾지 못하는 독자들에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고 유혹함으로써 그들을 영원히 ‘사춘기 신앙’에 멈춰있게 한다. 어느 시점에서는 답이 아니라 답을 찾으려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신뢰하면서 애니 딜라드가 말한 ‘인생의 괴물들’과 정면 승부를 펼쳐야 하는데도 계속 회피하게 만드는 것이다.” (186)
6. 우리는 예배에서 고통과 아픔을 슬퍼할 수 있어야 한다: 영화, 필로미나의 기적. 시편에는 바빌로니아 포로기에 이스라엘이 경험했던 혼란과 침통함이 반영된 시가 많기 때문에 가슴이 미어지는 애가도 수두룩하다. (191) 예배 교독문에서 시편에서의 분노와 절규를 담지 않고 있는 것. 캐슬린 노리스, 시편은 “우리에게 가르친다. 찬양은 아무런 근거 없이 현실을 낙관적으로 보는 망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기뻐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에서 나오는 것임을.” (193) 라승찬, 『예언자의 슬픔』, “예배에서 애통함이라는 주제가 사라진 결과, 미국 교회는 기억 상실증에 걸렸다. 고통과 아픔을 슬퍼해야 할 필요를 잊었고 더 나아가 고통과 아픔의 존재 자체를 잊어버렸다.” (194) 승리 지상주의와 미국식 낙관주의는 슬퍼하는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능력을 상실한 신앙 공동체를 감염시켜 결국 공동체를 고사시킨다. (195) 가장 연약한 순간에 예수님이 시편을 떠올리셨다는 사실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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