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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영성기도

마틴 슐레스케, 『바이올린과 순례자』, 날이 무뎌졌다고 연장 자체가 가치를 잃은 것은 아니다

by growingseed 2021. 7. 12.

마틴 슐레스케, 『바이올린과 순례자』, 니케 북스, 2016 


에베소서에서도 자신의 마음을 방치한 사람들을 ‘무뎌진 자’, ‘감각이 없어진 자’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이 ‘연마된 연장’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8) 사는 일이 힘든 것이 아니라, 마음이 무뎌진 것입니다. 연장이 무뎌졌는데도 날을 갈지 않으면 온 힘을 동원해 일해야 한다는 ‘전도서’의 가르침처럼 마음을 방치하고 가다듬지 않았기 때문에 힘든 것입니다. 세상을 대하는 우리의 연장이 무뎌진 탓입니다. (19) 


무딘 연장으로 일하는 바이올린 마이스터가 나무에 대한 감을 잃어버리듯, 무딘 마음으로 사는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이 옳은지, 제대로 하고 있는지 감을 잡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정작 마음을 써야 하는 일을 등한시하고, 내버려 두어도 될 일, 하지 않아도 될 일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수가 있습니다. 삶의 매 순간에 깃든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영적으로 깨어 있지 못하며, 현재에 살지 못합니다. 그러다 보면 부지불식 간에 삶의 결을 거슬러 살게 됩니다. 그런 삶에는 울림이 없습니다. (19) 

우리가 무뎌졌다는 것은 소명대로 사는 일이 녹록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무뎌지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닙니다. 무뎌진 마음을 벼리려 하지 않는 태도가 나쁩니다. (20) 

연장을 벼리려면 작업을 멈추어야 합니다. 마음을 벼리기 위해서도 하던 일을 멈추어야 합니다. (21) 

악기의 음이 맞지 않는데 열과 성을 다해 연주하는 것은 아무 소용 없는 일입니다. 맞지 않는 음정은 열성을 다한다고 상쇄되지 않습니다. 연주하기 전에 악기를 조율해야 합니다. (22) 

충만한 세계에서 살지, 결핍된 세계에서 살지 결정하는 것은 자신의 몫입니다. 상대방에게 감사할 줄 모르는 관계는 추해지고 힘들어집니다. 각자의 이 빠진 마음으로 서로 할퀴기 때문입니다. 뭉툭해지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혜가 우리의 마음을 연마하도록 내맡기느냐 그렇지 않으냐가 중요합니다. (25) 

칼을 연마할 때는 적절한 압력이 필요합니다… 너무 높은 압력을 가하면 쇠가 열을 받아 달아오르고, 달구어진 쇠는 물러집니다. 그런 부분은 검푸른 빛을 띠는데, 말하자면 그 부분이 타 버린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빗대자면 쇠를 시퍼렇게 벼리는 것은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박탈하는 것과 같습니다… 참회를 자기 비하와 혼동해서는 안됩니다… 메타노이아, 즉 돌이킴은 미래를 만드는 고귀한 행위입니다… 미래를 기대할 때 희망이 중요하다면, 과거를 돌아볼 때는 용서가 중요합니다… (25-27) 

날이 무뎌졌다고 연장 자체가 가치를 잃은 것은 아닙니다. 무뎌진 날은 지금까지 연장이 힘든 과정을 겪었음을 보여 주며, 다시 연마해야 한다고 역설하는 것일 뿐입니다. 셩경이 죄를 이야기하고 인간을 돌이키고자 하는 것은 인간을 죄인으로 비하하고 낙인찍기 위함이 아닙니다. 인간을 사랑하는 자로 굳게 새우기 위함입니다.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 있게 하고자 하는 것이며, 심연으로 밀어 넣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길을 보여 주려 하는 것입니다. (27) 

시종일관 시선을 안쪽으로만 두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전혀 무뎌지지 않았는데도 계속해서 벼리기만 하는 연장과 같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세상을 향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자신만을 끊임없이 살핍니다. 계속해서 내면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죄와 상처만 염두에 둡니다. 마치 스스로 심판하거나 치유할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 마음의 날이 어떤 상태인지 알려면 생각에 몰두할 것이 아니라 일을 해야 합니다. (29) 

왜 그렇게 괴로워만 하느냐? 늘 스스로를 거부하고 비판하는 것도 일종의 자만이니라. 행여 스스로를 엄격히 대하는 데서 즐거움을 찾고 있지는 않느냐? (29) 

…스스로 늘 불충분하다고 여기는 태도 역시 일종의 교만일 수 있습니다… 부버는 하시디즘에 대한 해석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정말로 잘못된 자기 숙고가 있다. 이는 사람을 회심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도리어 회심을 가망없는 일로 치부한다. 그리하여 회심할 수 없는 상태로 몰아가 교만의 힘으로 살도록 유도한다.”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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