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돈, 『일그러진 한국 교회의 얼굴』, IVP, 2013
한국 교회의 사회적 신임과 이미지는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파손 되요 한국에 선교는 이제 끝난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까지 될 정도다. 자칫하면 한국 교회가 교회 역사의 그 유래를 찾을 수 없이 급성장 했다는 명성과 함께 초고속으로 몰락해 버린 교회라는 오명까지 안을 위기에 도착한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여전히 모범적인 교회들이 존재하고 이름도 없이 신실하게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한국 교회 아직 희망이 있다는 식의 안일하고 무책임한 생각만 하면서 현실적인 대처를 등한시 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한국 교회가 실패한 자리가 바로 한국 교회가 다시 시작해야 할 자리다. 총체적인 부패와 붕괴 조짐은 새로운 건설과 생성의 기회다. 새로운 출발을 위해 과거를 반성해야 한다. 한국 교회의 타락과 세속화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밝히기 드러내는 심층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한국 교회가 급속하게 붕괴해 가고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 우리 교회는 어디로 나가야 하는가? 실패의 바닥에서 우리가 다시 세워야 하는 새로운 교회 청사진은 어떤 모습이 여야 하는가? 그동안 한국 교회는 온전한 교회의 설계도가 없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성경 말씀에 충실하게 작성된 것이 아닌, 성공 신화에게 영감을 받아 세속적인 가치관에 위해 고안된 청사진이 교회 성장을 주관해 왔다. 성장 주의 패러다임의문제와 관계가 여실히 드러나 용도 폐기 되어야 할 시점에서 교회가 대안으로 택해야 할 성장의 패러다임은 무엇이며, 추구해야 할 교회 청사진은 어떤 것인지를, 너무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속히 재정립해야 한다. (10-11)
백주년기념교회 방문을 통해 한가지 확인한 사실은 교회가 다른 면에 문제가 없을지라도 또 목사의 인격과 자질이 뛰어나고 설교가 은혜로우며 재정관리가 투명하고 교회 운영이 민주적 일지라도 인격적인 교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교회 규모가 비대해지면 교제 영이 신 성령이 충만한 임재가 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18)
분명 대형 교회 현상이 한국 교회 세속화에 일조한 것도 사실이고 목사들의 탐욕이 성스러운 명분으로 위장된 종교적인 야망에서 촉발 되었다는 점도 일정 부분 부인할 수 없다. 욕망의 세속 화가 모든 문제 근저에 깔려있다는 심층적인 분석이 한국 교회의 타락을 진단하는데 꼭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대형교회 현상을 욕망의 역학 으로만 푸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다. (19)
한국 교회는 크나 작으나 모두 잠재적인 대형교회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성장 지상주의를 추구 한다... 교인수가 급속히 감소해 위기에 처한 작은 교회는 교인수늘리기에 목을맬수밖에 없는 절박한 실정이다. 이런 부담이 고스란히 교인들에게 돌아오는 교회 생활이 말할 수 없이 고역스러워진다. 대형화를 갈망 하는 작은 교회는 대형 교회 보다 훨씬 못한 최악의 교회가 될 수 있다. 이런 작은 교회들의 문제가 교인들이 대형교회로 몰리게 하는 큰 요인이다. (34)
작은 교회는 실패한 것이고 큰 교회가 아름답고 성공한 것이라는 사고는 대기업이나 추구하는 자본주의 경영 논리지 교회가 따라야 할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방향과는 정면으로 충돌 된다. 교회가 추구해야 할 성장은 그리스도를 닮은 성장이다. 교회가 과연 성경적으로 건강하게 성장 성장 하고 있는지를 가늠하는 척도는 숫자가 아니라 거룩함이다. (38)
한국 교회가 선교 100년 만에 세계 최대 교회 와 세계에서 제일 큰 장로교회, 감리교회, 순복음 교회로 성장 하는 쾌거를 거두었다는 허황된 자랑의 뒤안길에는 온갖 비리와 부작용과 폐해가 가득하다. 대형 교회들에서 연이어 터지는 재정 비리, 세습, 성추행, 논문표절 등 낯뜨거운 문제는 한국 교회 얼굴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 (39)
성공 신화가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대신하고 교회를 주관 하며, 교회가 추구하는 지상 목표가 성장이 되면 교회의 모든 사역, 책 설교와 목회와 전도는 이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방편으로 동원 된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교회는 물론이고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까지 도구가 된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중의 기호 와 욕구와 취향에 맞추어 상품화 한다. 교인들을 영적 필요를 가진 소비자로 취급 하고 그들을 최대한 끌어 모으기 위해서 설교와 예배도 소비자 중심으로 전환 한다. 자연히 복음의 효율성과 대중성 시장 점유율을 중시하는자본주의적인 가치관이 교회를 지배하면서 복음은 심각하게 변질 될 수밖에 없다. 설교가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나오는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문화 코드 와 기호에 은밀히 맞추는 죽음의 언어로 전락 하는 것이다. 교회는 교인들을 천박한자본주의가 지배하는 문화에서 해방 시켜 천국에시민으로 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에 같이간과 제제 무기력하게 순응하는 제국의시녀가 되게 한다... 한국 교회의 양적 성장은 복음과 교회의 본질을 희생하고 훼손시킨 댓가로 성취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0-41)
신약 성경에 나타나는 가장 중요하고 대표적인 교회 이미지가 그리스도의 몸이다. (49)
그리스도는 만물 안에 충만히 거하시지만 일 차적으로 그의 몸인 교회 안에 거 하시고 그 몸의 성장을 위해 특별한 은총으로 역사하신다. 그 피로 성취하신 세 언약의 은혜를 교회의 전달하신다... 그리스도는 교회를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무리가 되게 하신다. 자신의 몸된 교회가 세상을 본받지 않고 머리신 그리스도를 닮아 가게 하신다. 또한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다시 세상 속에서 존재하고 활동 하시는 방식을 뜻한다. (48)
바울사도는 교회를 주 안에서 성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 하실 처소라고 하였다 그는 교회 안의 성령의 임재는 구약의 성막과 성전에 성령을 상징하는 구름이 가득 했다 구약 모티브의 실현이며. 하나님의 말씀에는 손으로 만든 성전이 아니라 친히 성령으로 우리 가운데 거 하시겠다고 하신 세 언약이 성취 된 것으로 보았다. 에베소서 2장 고린도 전서 3장 6장 고린도후서 6 장. (52)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는 말씀은 명령 이기 전에 비천한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의 성전이 되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밝혀 주는 말씀이다. 이는 구약에서 오래 대망했던 하나님의 약속 성취 다. 구원 역사가 점진적으로 발전함에 따라 성전 형태가 변천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짓기 전 성전의 전신은 모세가 지은 성막이었다. 구약에서 성막과 성전은 하나님이 그의 백성과 함께 하신다는 약속의 구체적인 표현이며 임마누엘의 상징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성전은 운전한 임마누엘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예수님은 예수님은 자신의 육체를 제물로 바쳐 하나님께 영원한 제사를 드림으로 재사 제도를 완전히 폐지 하셨다. 그래서 주님은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하셨다. 이것은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다. (54-55)
과거 유다 왕국의 바벨론에게 멸망 당하게 몇 년전, 에스겔은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서 떠나가고 그 대신 성전에서부터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환상을 보았다. 에스겔서 8장 에서 11장까지 하나님의 영광의 성전에서 떠나는 것이 점진적으로 묘사 되었다...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에게서 떠나고 있는데도 우리는 영적으로 너무 어두워 그 사실 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58-59)
교회가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 하였을지라도, 성령의 임재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교회가 성령을 거스르고 근심 시키는 죄가 만성화 되면 오래 참고 기다리시던 성령이 교회에서 떠난다... 이것이 교회 역사가 보여 주는 성령을 근심하게 한 교회의 비참한 말로이며 지금 한국 교회가 직면한 절체절명의 위기이다. (60)
작은 교회목사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경제적인 어려움과 열악한 목회 여건만이 아니다. 아무리 기도하며 애써도 교회가 성장 하지 않을 때 밀려오는 자괴감, 거기에 더해 교회를 성장시킨 목사가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는 목사라는 단선적인 가치관이 편만해져 작은 교회 목사는 은연 중에 실패자로 취급 받는 남모르는 설움을 삭혀야 한다... 패배의식으로 병들어 있는 목회자의 메세지와 사역은 고스란히 교인들에게 전가 되어 그들의 영혼마저 피폐하게 한다. (7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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