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리 코언, 『잔인한 국가 외면하는 대중』, 조효제 옮김, 창비, 2009
Stanely Cohen, States of Denial: Knowing about Atrocities and Suffering, Polity Press: Cambridge, 2001
저자는 인간에게 ‘부인’ 심리는 예외가 아니라 정상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왜 그 사건에 침묵하고 부인하는가?” 라고 묻기보다, 대다수 사람들이 부인하지만 왜 어떤 이들은 부인하지 않고, 인권 단체에 가입하며, 미약하게나마 행동에 나서고, 자기가 할 수 있는 바를 실천하는 것일까, 라고 되물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소극성을 자책하는 깊은 수치심’을 사회적 행동의 원동력으로 역이용할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26, 옮긴이 해설)
1. 부인의 내용
어떤 것을 부인하느냐에 따라 세가지 부인이 있을 수 있다. (1) 문자적 부인: 엄연한 사실을 일어나지 않았다거나 진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58) (2) 해석적 부인: 어떤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사건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석한다. (58) (3) 함축적 부인: 사실 자체를 부정하거나 통상적인 해석을 부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함축적 (implicatory) 부인은, 어떤 사건에 흔히 따라오는 심리적, 정치적, 도덕적 함의를 부정하거나 축소한다. 소말리아에서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 보스니아에서 집단강간당한 여성들, 동티모르 집단학살, 길거리 노숙자에 대한 사실 자체는 인정한다. 그러나 이런 일을 가슴 아파하거나 시급히 조처해야 할 도덕적 사건으로 보지 않는다. (60)
각각의 부인 방식은 독특한 심리적 상태에서 기인한다. 문자적 부인은 진정일 수도 있고, 죄를 물을 수 없는 무지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다. 또는 너무 지나쳐서 도저히 인정하고 싶지 않은 진실을 외면하는 행위이거나, 진실을 감추는 자기기만의 회색지대에서 나온 반응일 수도 있다. 기존 세계관을 당연시하는 문화적 풍토 때문에 문제를 인지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전부 아니라면 거짓, 허위 또는 역정보의 계산된 형태일 수도 있다. 해석적 부인은 어떤 사실이 남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말 이해하지 못하는 무능, 도덕적, 법적 책임 회피를 위해 사건을 냉소적으로 달리 명명하는 것 등 여러 행위를 포함한다. 함축적 부인은 도덕적, 심리적 부담을 덜기 위한, 평범한 사람들의 얄팍한 계산에서 비롯되지만 짐짓 진심인 체하기도 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부인은 인지(사실을 시인하지 않음), 감정(느낌이 없음, 괘념치 않음), 도덕성(잘못된 것을 인정하지 않고 책임도 부정함), 그리고 행위(알고 있음에도 적극적인 조처를 취하지 않음)를 모두 포함한다. (62)
2. 개인적 (personal), 조직적 (official), 문화적 (cultural) 부인
부인은 개인적, 인간적, 심리적, 사적 성격을 띨 수도 있고, 사회적이고 집단적이며 조직적인 그 무엇일 수도 있다... 공개적, 집단적이며 고도로 조직된 '부인', 특히 현대국가의 엄청난 권력기구를 동원한 각종 '부인'이 있다. 예컨대 기근이나 정치적 학살의 은폐 또는 국제 무기금수조치의 의도적인 위반 등이다. (64-65)
3. 시간: 역사적 부인(historical denial)과 동시대적 부인 (contemporary denial)
인지심리학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기 마음이 처리할 수 있는 양보다 훨씬 더 많은 자극을 받는다... 우리는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할 뿐더러 받아 들이는 정보에 대응하여 행동해야겠다는 책임감도 없다.... 온정피로증 (compassion fatigue) 이론에 따르면 어떤 고통에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둔해지며, 여과작용은 더욱 더 선택적으로 변한다. (69)
"코언이 인권침해와 이로 인한 인간의 고통을 분석하는 틀은 ‘부인’(Denial)이라는 개념이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부인을 심리적 방어기제로 개념화했는데,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불편한 사실에 직면했을 때 그것이 사실임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많아도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을 가리킨다. 코언은 인권을 침해한 가해자뿐만 아니라 이를 보거나 인지한 관찰자, 심지어는 피해자조차도 때로는 사실 정보를 어떤 식으로든 부정하거나 제쳐두거나 재해석한다고 말한다.인권침해를 부인하는 메커니즘은 문자 그대로 사실을 부인하는 ‘문자적 부인’, 사실은 인정하지만 다른 해석을 갖다 대는 ‘해석적 부인’, 사실과 그 해석은 부정하지 않지만 그에 따른 책임을 떠넘기고 자신을 정당화하는 ‘함축적 부인’으로 나뉜다. 민간인 학살을 자행한 국가권력은 “학살은 없었다”(문자적 부인)고 사실 자체를 공식 부인한다. 다음은 완곡어법이나 초점을 흐리는 용어를 써서 “실제론 그렇지 않다”(해석적 부인)고 주장한다. 인종청소를 인구교체로, 학살을 부수적 피해로 표현하는 식이다. 영국군은 북아일랜드에서 ‘고문’을 자행한 뒤에 이를 ‘집중 심문’이라고 표현했다. 인권침해 증거가 너무 많거나 여론의 향배에 따라 “그 사건은 정당화될 수 있다”는 함축적 부인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허미경 기자, https://www.hani.co.kr/arti/PRINT/358911.html)
https://www.youtube.com/watch?v=jm7JAF3ENnE
https://www.youtube.com/watch?v=MBRWRVEfB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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