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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영성기도/04-1 영성훈련

달라스 윌라드, 『하나님의 음성』,이십대 시절의 몸부림

by growingseed 2001. 10. 1.


막차 시간 즈음이면 거리는 오가는 사람들로 오히려 붐비게 된다. 차가 끊어질까 서두르는 친구들, 버스를 기다리며 서 있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하루의 피곤이 겹겹이 쌓여 있는 것만 같다. 길 한구석 가로수 그늘 밑에는 한 노인이 매일같이 자기 몸보다도 더 큰 쓰레기 더미들을 리어카에 싣고 가는데, 마치 그것이 노인께서 평생을 지고 가는 달팽이 집 같아 보일 때가 있어 괜히 내 걸음이 무거워질 때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한밤중의 웅성거림도 아주 잠깐일 뿐이다. 밤이 더 깊어지면 거리에는 인적도 끊어지고 큰길을 벗어난 골목에는 편의점 하나 없어 조용하기만 하다. 나는 이 익숙한 골목길을 따라 집으로 오른다. 거리의 소음이 그친 적막한 골목길은 오늘 하루 나와 함께 하셨던 그 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마음의 자리를 마련해준다. 그리고 나는 동네 교회의 기도실에 들러 기도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의 마지막을 삼는다.

사실 개인의 기도생활의 내용을 말하려 함에는 많은 부담이 따른다. 하나님의 임재가 매일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무엇인가 불확실함에서 오는 혼란이 자주 있는 까닭이다. 솔직히 최근 나는 오랜 동안의 하나님의 부재로 인하여 마음이 많이 힘들어 있었다. 위에서 묘사한 고요도 영혼을 늘 일깨워주는 것은 아니었다. 기도할 때조차 답답함이 계속되었고, 오히려 내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의 빈약함을 더욱더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만 같았다. 정말 내가 무엇을 구하고 있는 것인지, 이 기다림은 어떻게 끝날 수 있는 것인지를 계속해서 되묻게 되었다. 이제까지도 하나님은 사람들을 눈여겨보고 삶의 구석구석에 스며있는 하나님의 숨결을 그냥 지나치지 않도록 도와주셨지만 자주 감상에만 그치던 묵상은 삶의 근저에 있는 긴장까지 만져줄 수는 없었던 것 같다. 하나님께서 그 동안 내 삶에 개입하시고 그 분의 신실하심을 알게 하신 기억은 또렷했지만 그 이상의 생생한 교제는 지금은 있지가 않았다.

기도실을 나서서 집으로 향하는 길도 만가지 마음이었다. 공동체 친구들과 함께 자취하고 있는 집으로 가는 길을 오르며 마음을 새롭게 해보려 찬양을 속삭이지만 한숨을 쉬게 되는 날도 많았다. 대문 앞 쓰레기를 뒤지던 고양이를 놀래킬 마음으로 크게 박수도 쳐보고 친구들을 생각하면서는 우리가 함께 그리스도의 몸 되었음을 기억하려 애썼지만, 문을 들어서면 아직 그대로인 설거지거리들과 비워야 할 쓰레기 통, 쌓여 있는 빨래들이 마음을 속상하게 할 때가 있었다. 그렇게 여러 생각에 잠이 들고 또 다시 해가 떠서 맞는 것은 매일 비슷한 하루의 일상이었다. 경건 생활은 지속이 되고 이 모든 곤궁을 내어 맡겨 드리며 기도하지만 쉽게 깨어질 것 같은 평안에, 내 근본적인 삶이 바꾸어지지 않는 것 같은 낙심에 마음은 자꾸만 피곤해졌다.

그러던 중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고 계셨음을 알게 해준 것은 엉뚱하게도 며칠 전 소그룹에서의 일이었다. 개강 후 소그룹이 짜여지고 나는 뭔가 달라진 섬김을 하겠다는 열의로 가득 차 있었다. 모임계획도 세우고 기도 가운데 소망도 품었다. 그런데 그렇게 시작한 모임에 내가 섬길 수 있는 자리는 없는 것 같았다. 나와는 너무 다른 생각과 성격을 가진 사람들. 그보다도 나의 영향력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같아 마음이 너무나 어려웠다. 결국은 모임이 끝나고 기도하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울컥하고 치솟는 속상함을 그대로 드러내고 말았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지금도 돌이켜보면 섬기는 자로서 어떻게 그토록 미성숙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멤버들은 무언가 위로를 해주려는 듯한데 난 그것을 받아들일 만한 마음이 전혀 없었다. 여느 때처럼 기도실에 갔지만 기도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쌓이고 쌓인 답답함들을 안은 채 거기서 그렇게 잠이 들었고, 다음날도 해가 지기까지 종일토록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었다. 하나님께서 내게 무엇을 말씀하려 하시는가. 같이 사는 형의 조언은 나로 이 섬김이 다름 아닌 예수님을 닮아가는 과정임을 기억하게 해주었다. 방에 돌아와 하나하나 떠올리는 기도 속에 나는 나의 섬김의 동기 이면에 가지고 있던 인정에의 욕구들을 보게 되었다. 이제까지 내 것을 다 내어주며 섬겼다고 했었지만 나의 헌신뿐이었지 정작 내 자신은 내어 주지 않았던 것이었다. 섬김이라는 화두를 끌어안고 무수히 고민했지만 섬기는 사람들과 함께 누리는 기쁨과 자유가 있지 않았다. 누군가 내게 건네주었던 “우리는 우리 존재로서 사람들을 더 온전히 섬길 수 있다”는 말이 뼈저리게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그 날의 일은 아무도 일러줄 수 없었던 나의 모남에 대한 소그룹 사람들의 개입이었다. 그리고 나를 그분과의 관계 속으로 부르고 계시는 하나님의 개입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자리마다 황폐케 되는 것만 같아 괴로이 울부짖었을 때에 나의 섬김이 아닌 나를 원하신다는 그 분의 부드러운 음성이 지금 다시 들려지고 있었다.

후배로부터 이 책을 건네받았을 때만 해도 나는 하나님의 음성을 친구의 우정어린 목소리로 여기지 못했던 것 같다. 부끄럽지만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과 지속적인 관계 또한 사실 사역을 위한 부담일 때가 많았다. 더 분명히 말한다면 결국 사역자로서의 인정을 위한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탁월하게 섬기려는 마음과 더 능력 있는 기도를 하고 싶어 했던 비교의식이 내게 있었나 보다. 성경이 약속한 삶을 살고 싶은 열병과 몸부림들이 있었지만 내가 그 삶을 이뤄내야 한다는 부담과 긴장은 나를 녹초로 만들고 있었다.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에 대하여 많이 돌아보게 되었고 내 삶의 의미에 대해서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하나님 앞에서 나는 있는 그대로 그분께 소중한 존재이며 그분의 말씀을 듣는 여부가 나를 중요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내 본위의 삶을 포기하지 못하던 내게는 잊혀진 복음이었다. 이제 나는 다른 어떤 인정보다도 하나님과의 우정과 사람들과의 우정 가운데 그렇게 하나님을 진실되이 알아가고 싶다. 그 음성 들리지 않을 때에라도 나와 함께 계시며 나를 온전히 아신바 되신 하나님을 아는 까닭에 기다림 또한 나의 나됨을 기억케 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오늘밤 집으로 돌아가는 길과 내일 다시 맞는 아침이 사뭇 새로워지길 기도한다.

20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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