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천덕 R.A.Torrey III, 『대천덕 자서전: 개척자의 길』, 양혜원 옮김, 홍성사, 1998, 1999
한 번은 날이 어둑해질 무렵에 마차리에 있는 기차역에서 예수원이 있는 산으로 올라가야 했던 적이 있었다. 가다가 마차리 주민 몇 분을 만났는데, 고맙게도 나에게 마을에서 하룻밤 묵고 가라고 청하는 것이었다. “혼자 가기가 무섭지 않으세요?” 하고 그 분들이 물었다. 만약 내가 혼자서 올라가는 것이었다면 그 어느 때보다도 무서웠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예수님과 함께 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 분들에게 내가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라는 사람과 함께 가는 중이라고 대답했다. 몇 년이 지난 후에 마을 사람들이 나를 ‘예수와 다니는 사람’이라고 부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12
부모님은 1913년에 중국에 도착하자마자 언어 공부를 시작했는데, 곧 서로를 마주 보며 “성령의 능력 없이는 결코 이 일을 할 수가 없겠군. 우리 성령 세례를 달라고 기도로 간구합시다”라고 말하게 되었다. 부모님은 성령 세례를 간구했고, 그 때부터 성령의 능력으로 일했다. 16
안식년을 맞아 우리 가족이 미국에 갔을 때, 나는 또래 아이들에게 ‘중국 아이’로 통했고 열등감을 많이 느꼈다. 하지만 나는 선교사들의 문화, 즉 내가 자란 배경에서는 ‘근본주의자’ (fundamentalist)라고 이름 붙여진 그 문화 외에 다른 문화를 받아들일 생각은 하지 않았다. 몇 년 후 나는 할아버지가 The Fundamentals 이라는 제목으로 몇 권의 소책자를 쓰셨고, 그 책 제목 때문에 근본주의 운동이 그 이름을 얻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근본주의자들이 성령 세례에 대한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무시하거나 거부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성령 세례를 받느냐 여부에 따라 우리는 바리새적인 태도를 갖게 될 수도 있고 개척자이신 예수님과 살아 있는 관계를 맺을 수도 있다. 25
나는 다시 한 번 실천적 사회 운동 프로그램을 가진 기독교 단체를 찾는 고아가 되었다. 그 때 아내가 성공회 부인들을 위한 수양회에서 헨리 조지를 소개 받고 집에 와서 내게 그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가 쓴 <진보와 빈곤> (Progress and Poverty)을 읽으면서 그가 사회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어떻게 비평했는지 보았고, 드디어 성경의 가르침과 완벽하게 일관된 체계를 발견했다… 나의 간절한 바람은 한국이 이 제도를 도입하도록 설득해서 지금의 이 혼란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33
희년 외에도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단어가 또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코이노니아’였다. 147
그래서 나는 하나님께 “얼마 동안 여기에 있어야 합니까?”하고 물었다. 내 생각 속에 분명한 대답이 들렸다. “7년이다.” 이 말은 항상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때가 되면 우리 두 사람 모두에게 하나님이 분명히 말씀하실 것이라고 믿었다. 지금까지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마다 하나님은 항상 그렇게 해 오셨기 때문이었다. 186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 주신 ‘공동체’의 개념을 이해하고 하나님이 자신을 그러한 삶으로 부르셨다는 것을 확신하는 사람들이 예수원에 모이기까지는 여러 해가 걸렸다. 212
그 때 이후로 나는 주님께 내가 진로를 바꾸어야 하는지 여쭈어 보곤 했다. 주님께서는 종종 말씀하셨다. “내가 지시를 내리기 전까지는 지금 그대로 가거라” 나는 먼 장래의 계획에 대해 염려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내가 해야 할 것들을 말씀해 주실 시간이 넉넉히 있기 때문이다. 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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