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우드 홀, 『닥터 홀의 조선회상』, 조선에 온 아버지의 발자취

셔우드 홀, 『닥터 홀의 조선회상』, 동아일보사, 1984

Sherwood Hall, With Stethoscope in Asia: Korea, 1978

나의 아버지 윌리엄 제임즈 홀은 캐나다 온테리오주에 있는 글렌 뷰엘이라는 곳의 한 통나무집에서 1860년 1월 16일 태어났다. 다섯 형제 중 맏이였는데 어려서부터 특출하게 총명하지는 않았으나 심각하고 사려 깊은 소년이었다. … 결국 심한 기침과 열이 계속되어 극도로 허약해진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와 죽을 때를 기다렸다. 그 때가 열아홉살이었다. 14세부터 이미 기독교 신자였던 아버지는 자신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위해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덧없이 죽게 된 점을 가장 괴로와했다… 다시 살아난 아버지의 가슴 속에는 ‘이제 나에게 주어진 이 짧은 인생을 어떻게 해야 가장 뜻있게 보낼 수 있을끼?’ 하는 생각으로 꽉 차 있었다… 아버지는 전날에 다녔던, 교실이 하나밖에 없는 글렌 뷰엘 학교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학업에 몰두했다… 아버지는 1883년 교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2년간 교사로 일했다. 그는 학교에서 받은 봉급과 틈틈이 책과 생명보험 세일즈맨으로 일하여 번 돈을 모아 1885년에는 온테리오주 킹스턴에 있는 퀸즈대학교의 의과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1887년 대학의 봄 학기, 그에게 인생의 한 전기가 찾아왔다. ‘해외선교 학생자원운동’의 인도지역 책임자인 존 포먼 목사가 퀸즈대학교를 방문했다. 학생들 22명이 해외선교에 참가하겠다는 서명을 했다. 그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서명한 학생들은 학교 내에 ‘학생자원회’를 결성했다. (61-62)

로제타, 난 방금 조선으로 임명을 받았소… 하나님이 길을 열어 주시니 기쁩니다. 하나님은 내가 어디든지 즐겁게 주님을 위해 갈 것이라는 점을 아셨습니다. 우리가 곧 만나게 된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모두들 여기에 남아 있으라고 하지만 해외선교는 하나님의 뜻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68)

로제타 홀의 편지, “불교는 국법에 의하여 금지되어 있다. 서민계층의 사람들은 잡신을 숭배하고 상류계급에서는 유교의 영향을 받지만 국가에서 정해 놓은 종교는 없다. 이 나라의 백성들은 선교사들이 가져오는 예수님의 ‘좋은 소식’을 기다리는 것 같다. 실제로 길에 나가면 하나님과 예수에 대해서 이야기해줘서 고맙다고 인사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아직도 조선에서는 여자들은 혼도 없고 이름을 지닐 가치가 없는 존재라고 믿는다… 서울의 선교사들은 부인들까지 합쳐서 25명이다. 이 숫자가 1백만명의 서울 인구에 대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더구나 조선 전지역의 1천1백만명에게는. 외국인에게 개방된 항구는 3개나 되지만 선교사가 없다. 큰 수확을 위해 일할 사람들이 모자라는 형편이다.” (81)

존즈목사는 새로 오는 선교사를 맞으러 제물포로 갔으나 서울까지 27마일의 거리를 여행하기 위한 말을 한 마리밖에 구하지 못했다. 존즈씨는 후에 닥터 홀의 실천적인 성격의 한 단면을 봤다고 회고했다. 닥터 홀은 말이 한 마리밖에 없는 걸 보고는 6척 장신인 자기에게는 말이 너무 작아서, 서울까지 걷는 게 오히려 마음 편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85)

닥터 홀은 평양을 떠나 서울로 돌아올 때, … 시체 곁에는 상처가 심한 사람 하나가 쓰러져 있었는데 간호해 주지 않는다면 이 추운 겨울날씨에 살아남지 못할 게 틀림없었다…. 처음 본 순간 닥터 홀은 여기에 말려들지 말고 그냥 지나가자는 강한 유혹을 느꼈다. 그러나 시간과 돈은 모자랐으나,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었다. 그는 우선 부상자에게 응급치료를 해 준 다음 짐을 실었던 나귀에 그 사람을 조심스레 태우고는 그 날 아침에 떠났던 여관을 향하여 길을 되돌아갔다… 갖고 있던 돈은 모두 여관 주인에게 주었으므로 닥터 홀은 이제 초라한 음식이나마 하루에 한끼밖에 먹을 수 없었다. 그는 강도에게 습격을 받게 된다해도 빼앗길 게 없어 잘 됐다고 억지로 자신을 위로했다… 그가 일정대로 도착하지 못해 걱정하고 있었던 그의 아내는 남편이 도착하자 한시름 놓았다. (94-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