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05 선교신학/05-1 선교사 자서전

정연희, 『길따라 믿음따라』, 제임스 홀이 남긴 유산

by growingseed 2021. 2. 13.




정연희, 『길따라 믿음따라』, 두란노서원, 1990

 1894년 11월, 34세의 젊은 의사 주검이 또 다시 양화진을 찾아왔다. 동학진압을 핑계로 이 땅에 들어 왔던 청나라 군사와 일본이 이 땅을 전쟁 마당으로 삼아 휩쓸던 때에, 그의 선교지였던 평양이 격전지가 되자 한성에다 아내와 아들을 두고 되돌아가 부상자를 치료하다가 장티푸스와 폐렴이 겹쳐 쓰러진 윌리암 제임스 홀이다.

결혼 후, 로제타는 한성에 있는 병원 근무를 명령 받았고, 제임스는 평양선교기지 개척 담당자로 임명된 것이다. 일년 중 추위가 극심한 한겨울과 우기의 몇 달을 제외하고는 평양에서 근무해야만 했다… 제임스에게는 꼬박 이레가 걸리는 한양길이 즐거웠다…. 아들 셔우드 홀이 첫 아기로 태어나고 평양 선교에 뜻하지 않은 박해와 방해가 계속 되어도 제임스 홀은 사랑과 신념을 안고 전진 또 전진을 했다. 평양에서 일을 마치고 아내에게로 돌아 갈 때는 아내와 함께 하는 시간을 벌기 위하여 하루에 140리를 걸어 자정 가까운 시간에 집에 닿는 일도 있었다…

평양성 안에서의 전투는 1894년 9월 15일, 제임스가 평양으로 뚫고 들어간 것은 10월 초의 일이었다. 격전이 벌어지기 전에도 성내에는 전염병 장티푸스가 만연했었다… 제임스는 사람과 말들의 시체가 즐비한 길을 거쳐 평양으로 들어갔고 전쟁 때에 부상한 부상병과 그밖의 환자들을 돌보았다. 11월 10일은 사랑하는 아들 셔우드 홀의 돌이건만 아버지 제임스는 파괴와 죽음과 질병과 부상이 널려 있는 평양에서 밤낮없이 줄곧 환자를 돌보아야 했다… 천신만고 끝에 일본 수송선을 빌려타고 제물포에 이르렀으나 그 곳에서 한강 뱃길로 한성을 향하던 중, 강화도 건너편에서 암초에 걸려 한밤을 신고하던 끝에 새벽녘에서야 다른 배를 구하여 한성에까지 이르렀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앞에서 한 주일동안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로제타는 두 번째 아기를 가진 지 7개월째 되는 무거운 몸이었다. (17)

품에 안긴 돌짜리 아들과 이제 두어 달 후면 태어날 뱃속의 아이를 안고 남편의 관뚜껑 위로 언 땅의 흙이 투덕투덕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로제타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었으며 할 수 있는 말이 무엇이었을까. (18)

하늘나라 갈 길이 그렇게도 급하여 제임스는 만나는 사람마다 그렇게 마음을 쏟아 부어 사랑하고 섬기고 무엇이든 아낌없이 주며 헌신을 했던 걸까. (19)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