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지스 페르난도, 『진정한 종』, IVP 소책자, 2000
Ajith Fernando, An Authentic Servant, Didasko Publishing of Lausanne Committee, 1999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고후 4:12)
영적 사역을 하는 우리는 다른 사람을 위하여 죽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우리는 기꺼이 다른 사람을 위해 죽고자 하는가? 우리는 고난의 십자가가 기독교 사역의 본질임을 알 수 있다. 십자가를 피하면 영원한 열매를 얻지 못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 (요 15:13)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목숨을 버리기까지 친구들에게 헌신한다.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헌신과 세상이 요구하는 헌신의 근본적인 차이점이다. 삯꾼은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지만,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그 분을 따르라고 말씀하셨다 (막 8:34).
그리스도 제자에게 편안한 상황이란 없다. 우리에게 탄식은 해산의 고통처럼, 다가올 영광을 고대하는 자들에게 예상된 탄식이다(갈 4:19; 롬 8:22-23, 고후 4:16-17). 탄식을 삶의 본질적인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나면, 사람들을 열망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롬 9:1-3).
1.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한 열망
열망은 고통을 일으키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열망도 회피한다. 오늘날 사역에서 사람들은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이러한 열망을 놓치고 있다. 그러나 사역에 절박함을 일으키는 것은 바로 이 열망이다.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절박함을 두려워한다. 신뢰하고 간절히 기대했던 사람들이 우리에게 상처를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최선을 다한 계획이 실망과 부끄러움만을 남긴 채 끝났을 수도 있다. 우리는 감정을 보호하기 위한 방패막을 깨뜨리기 싫어한다. 우리가 바울이 영혼을 갈망하며 지녔던 절박함으로 사람들을 열망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절박함 대신, 탁월한 프로그램과 오락 그리고 일시적인 복에 대한 약속 등을 내세워 사람들을 끌어들이려고 한다. 오로지 즐거움을 추구하는 세대에 사는 우리는 어떻게 해서라도 고통을 피하려 한다.
2. 신자들을 향한 열망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갈 4:19)
성육신과 고통은 서로 분리할 수 없다. 프로페셔널리즘이라는 장벽을 넘어 영혼에 대한 열망을 품게 된다면, 그 갈망은 고통을 수반한다. 성경적인 그리스도인은 고통을 사람에게 헌신하는 데 따르기 마련인 본질적인 부분으로 받아들인다.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 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 (살전 2:8)
목숨까지도 내어 줌으로써 우리는 지도자를 키우게 된다. 바울은 디모데가 자신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박해를 받음과 고난을 안다고 하였다(딤후 3:10). 바울의 삶을 완전히 내어주었기에 디모데는 바울에 대해 모든 것을 알았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디모데를 보면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행하는지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고전 4:17).
성경적인 스트레스는 성취욕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에서 나온다. 성경적인 스트레스를 감당하려면 먼저 그것을 견딜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힘은 주님이 주신 기쁨에서 나온다. 요15:12-13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는 사랑을 도전하시면서 11절에 예수님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하신다고 말씀하신다. 주님으로부터 오는 기쁨을 소유하는 것은 사역을 위한 근본적인 조건이다.
빌립보서 4:4 항상 기뻐하라는 바울의 요청은 6절에서 보듯이 염려를 이기는 기도와 간구 가운데 성취된다. 기도의 씨름 가운데 우리는 기쁨을 회복한다. 주님이 주시는 기쁨과 같이 평강은 우리 삶에 필수적이다 (7절). 하나님 안에서 기쁨과 평강을 회복할 때 우리는 찢겨진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
죠지 뮬러, 허드슨 테일러, 존 스탬과 아내 베티, 그들은 먼저 하나님과의 독대하는 것을 가장 우선순위로 두었던 이들이다. 말씀을 향한 사랑과 말씀이 그의 전인격에 미친 지속적인 회복의 능력, 이것이 오랫동안 행복한 삶을 지킬 수 있게 한다.
싱할라와 타밀족과의 내전 가운데 저자는 스리랑카를 떠나지 않기로 결심한다. 학교가 문을 닫았지만, 아이들을 위해 행복한 가정을 꾸린다면 아이들이 궁극적으로 양육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우리가 분노와 고통, 죽음과 화장 연기로 둘러 싸여 있던 그 때, 말씀 안에 거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일시적이나마 끔찍한 상황에 처했을 때, 우리는 영원한 진리의 조명을 받으며 변하지 않는 것들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기독교 사역자들은 하나님에게서 힘을 공급받는 사람들이다. 주님이 주신 기쁨으로 영적 근육을 단련해서 강해져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화해의 사신이 되는데 꼭 필요하다. 사역의 중요한 원리는 사람을 만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받아 주실 때 우리는 비로소 사역할 수 있다.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살전 5:24)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막 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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